“살려달라 아우성 쳤지만…” 북한에서 고문당해 결국 시체로 돌아온 북한의 끔찍한 만행

2016년 초, 버지니아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평범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윔비어는 북한 당국에 의해 억류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북한에서 주장한 그의 억류 증거는 바로 윔비어가 자신이 머물던 양각도 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몰래 훔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억류 직후 북한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장에서 “나는 미국에게 이용당했다. 나의 잘못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북한 정부와 북한 국민들은 나를 용서해 달라 나를 살려달라”라며 울면서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본교인 버지니아 대학의  ‘Z소사이어티’에 가입하기 위해 체제 선전물을 훔쳤고 Z소사이어티는 CIA와 연계가 되어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렇듯 웜비어가 눈물로 진술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공개되었지만 누가 봐도 북한에 의해 강요된 거짓 진술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 진술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 직후 북한 최고 재판소는 윔비어에게 국가 전북 음모자의 죄목을 들어 ‘노동 교화형 15년형’을 선고했고 이마저도 원래는 무기 노동형이었지만 기자회견 때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에 형량을 감소해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많은 외국인들을 불법적으로 납치, 감금하여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했고 이번 오토 윔비어 또한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 상대로  많은 배상금을 뜯어내기 위한 하나의 카드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윔비어는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이후  북한 보위부에 의해 끌려가 자취를 감췄는데요. 이 인질을 두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어떠한 협상이 오고 갔는지 알려지지 않은 채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됩니다.

그리고 2017년 6월 2일 북한의 유엔대표부는 미국 정부에게 ‘윔비어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오토 윔비어와 함께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4명을 석방해 줄 테니  그 조건으로 미국 전직 대통령 4명을 파견하라는 어이없는 요구를 전달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당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 요구를 거절함과 동사에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평양으로 보냈고 평양으로 간 조셉 윤은 긴 시간의 협상 끝에 오토 윔비어를 미 공군 특별 전용기에 태운 채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윔비어는 억류 17개월째인 2017년 6월 식물인간 상태로 미국으로 송환되었고 안타깝게도 송환된 지6일 만에 사망했습니다.

북한의 억류된 미국인 중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함에 따라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는데요. 

어떠한 지병도 없았거 건장한 체격이었던 미국 대학생이 하루아침에 식물인간 상태가 된 이유에 대해서 북한 당국은 웜 비어가 ‘보툴리누스 식중독’에 걸렸고 수면제를 처방해줬는데 그 약을 먹은 이후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고 해명합니다.

하지만 윔비어가 살아있는 6일 동안 건강검진을 진행했던 의료진은 윔비어를  진찰한 결과 식중독에 걸린 흔적을 찾지 못했고 북한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죠.

분명 기자회견장 때까지만 해도 건강한 상태로 현재 북한 호텔에서 잘 지내고 있으며 밥도 잘 먹고 잠도 하루에 8시간씩 잔다며 웜비어 본인이 얘기했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왜 하필 북한에 가게 됐으며 대체 북한에서 어떤 일을 당한 것일까요? 미국 오하이오주 신신내티에 부유한 유대인 가문 출신에서 자란 오토 웜 비어는 장남으로서 부모의 지원을 듬뿍 받은 채 평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학생 대표로 졸업 연설을 했고 졸업 직후 버지니아 대학교에 진학하여 순조롭게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던 평범한 학생이었죠.

그리고 그는 재학 중 문득 오지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장소를 알아보던 중 북한 정부에서 판매하는 5일간의 북한 관광 패키지여행을 소개받게 됩니다..

그렇게 윔비어는 자신을 포함한 총 11명의 친구들과 함께 2015년 12월 말에 평양으로 떠나게 됩니다. 평양에 도착한 윔비어 일행은 평양에서 주최하는 여러 축제들을 즐기고 2016년 새해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평양 양각도 국제 호텔의 머무르며 관광을 즐기는데 이 과정에서 윔비어는 복도 한쪽 구석에 붙어 있는 포스터의 눈길이 갔고 그 포스터에는 김정일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신기했던 윔비어는 그 포스터를 떼서 돌돌 말아 챙기게 되죠.  그리고 이 모습은 호텔 cctv에 그대로 찍히게 됩니다.

5일간의 일정을 마친 윔비어 일행은 귀국날 공항에 들러 여권 심사를 받게 되는데 이때 윔비어 옆에 북한 공안들이 나타나서 그를 연행해가는 일이 발생합니다.

윔비어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고 약 두 달 후 북한이 주최한 기자회견장에 등장하게 되죠. 

북한은 그의 진술에 CIA 관련 이야기를 넣으면서 자신이 CIA의 지시를 받아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게 했는데 이렇게 될 경우 북한 형법 제60조인 ‘국가전복죄’에 해당되어 북한에서 주장하는 합법적인 감금이 가능하게 됩니다.

게다가 김 씨 일가에 대한 체제 물 훼손이 강력한 국가 범죄인 북한에서 김정일이 그려진 포스터를 훼손했기 때문에 윔비어는 더욱 북한에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죠.

또한, 여기에 윔비어의 억류 원인이  정치 선전물을 훼손한 게 아니라 김정을 사진이 실린 신문으로 신발을 싼 게 원인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이 공개된 이후 미국에 있는 윔비어와의 유가족들을 비롯한 국민은 불쌍한 대학생 윔비어를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하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지만 실제로는 이렇다 할 진전 없이 1년 이상의 시간이 허비하게 되었고 그렇게 그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윔비어의 혼수상태에 대해 북한은 “절대 고문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지만 이 말을 신뢰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북한에서 보내온 윔비어의 뇌 사진을 분석한 결과 이미 2016년 4월부터 뇌손상이 발생했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윔비어는 억류 기관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수상태로 지냈다는 말이 됩니다.

특히 오토 윔비어의 건강검진 결과 아랫니 2개의 위치가 크게 틀어진 것이 확인되어 물리적인 충격이 가해졌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었죠.

그동안 북한의 억류되어 노동 교화형을 받고 풀려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동 교화형을 받는 순간 인간적인 대우는 거의 받지 못하며 아파도 치료를 해주지 않는 아주 열악한 환경에 던져 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문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폭력이 동반되며  21살의 젊은 윔비어는 이 낯선 땅에서 고문을 당하며 심리적인 압박감과 공포감이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이 상황 속에서 물리적인 충격까지 가해져 뇌손상까지 이어진 것이라는 추측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토 윔비어처럼 노동교화형으로 15년을 선고받고 북한의 억류되었다가 2년만이 풀려나서 미국으로 돌아온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의 증언에 의하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주일 중 총 6일을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으며 쉬는 날에는 북한 TV 채널을 강제로 봐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초반 3개월 동안 27kg이나 빠져 영양실조로 후송될 정도로 처우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납북된 미국인이 사망한 채로 돌아온 최초의 이 사건을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고 미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18년 국정연설에서 윔비어의 부모를 초청했고 윔비어 가족을 향해 ‘세계를 위협하는 세력에 강력한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부모인 프레드 윔비어와 신디 윔비어는 북한을 상대로 5억 1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했고 미 법원 또한 당연히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또한 윔비어 가족들은 현재까지도 계속 다른 납북 피해 가족들과 연대하여 북한의 불법 활동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북한의 억류되어 있는 대한민국 국민과 외국인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들 또한 윔비어처럼 공포에 떨며 송화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