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의 환생, 여러분이 몰랐던 ‘달라이라마’의 충격적인 인생”

‘달라이’는 몽골어로 ‘큰 바다’라는 의미이며,’라마’는 지혜가 뛰어나고 덕이 높은 승려를 의미합니다.

1대 ‘달라이라마’는 1391년에 태어나, 1474년 세상을 떠났고 그는 성불하지 않고 이 땅에 남아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또 다른 육체에 환생을 거듭하며 ‘달라이라마’의 자리를 이어 간다고 예언 합니다.

사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불교 전체를 아우르는 수장은 아닙니다. 티베트 불교는 그 안에서도 여러 파가 나뉘는데, 겔룩파, 닝아파, 사꺄파 등 여러 파들 중 ‘달라이라마’는 ‘겔룩파’의 수장을 맡고 있는데, 겔룩 뒤에 붙는 ‘파’는 종파를 뜻하는 ‘파’가 아닌, ‘사람’을 의미하며 여러 파가 존재하는 티베트 불교이지만, 그들은 ‘겔룩파’의 수장인 ‘달라이라마’를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14번의 환생, 여러분이 몰랐던 '달라이라마'의 충격적인 인생"

달라이라마는 천주교로 얘기하면 교황의 자리와 흡사하며,신도들은 달라이라마를 살아있는 부처, 즉 ‘활불’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1933년 12월 17일 13대 달라이라마 툽덴 갸초는 향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인간의 육체적인 죽음은 순리 중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이며 13대 ‘달라이라마’를 모시던 대신들과 고승, 그리고 주지승들은 슬픔을 뒤로한 채, 달라이라마의 약속을 되새깁니다.

1대 ‘달라이라마’는 1391년에 태어나 1474년에 숨을 거두었고 계속해서 환생을 거듭하며, 현재 14대 달라이라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달라이라마’는 한 ‘인물’이 아닌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정신적 지주의 ‘정체성’을 일컫습니다.

몸은 유한하기에 계속해서 바뀌지만, 달라이라마의 ‘의식’과 ‘영혼’은 몸이 바뀌어도 동일한 것이죠 승려들은 어린 라모의 특정 행동들을 보고 13대 달라이라마가 환생한 아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매우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그들만의 종교, ‘티베트 불교’의 최고 수장 ‘달라이라마’과연 그는 진정 환생을 거듭하는 것이 맞으며, 승려들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환생한 달라이라마를 찾아내는 것일까요?

"14번의 환생, 여러분이 몰랐던 '달라이라마'의 충격적인 인생"

1935년 7월 6일 티베트의 동쪽 끝 시골마을 ‘암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상하게도 아이는 눈을 뜬 채로 태어났으며 다른 아이와는 다르게 울지 않았죠

부모는 아이의 이름을 ‘수호자’라는 뜻을 가진 ‘라모’를 붙여 ‘라모뒨둡’으로 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라모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아이에겐 또래와 다른 모습이 확연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식사 시간이 되면 가장인 아버지 자리인 ‘상석’에 앉으려고 고집을 부리는가 하면,자신이 태어났을 때 이야기를 수십 번, 수백 번 다시 들려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더욱 특이한 건 2살이 된 라모는 티베트 끝자락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그곳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들어보지도 못하고, 가보지도 않은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가겠다며 매일같이 울며 소리쳤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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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처음엔 몰랐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며 아이가 또래와는 다른단 걸 알게 되었을 무렵,어느 날 3살이 된 라모의 집에 본인들을 순례자라 소개하는 몇 명의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는데 이 순례자들은 하룻밤만 묵게 해달라며 라모의 부모님에게 부탁을 했고 그들은 흔쾌히 허락합니다.

라모는 갑자기 순례자의 목에 걸린 목주를 잡아당기며 “내거야”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순례자는 웃으며 묵주를 벗어 손에  쥐면 말합니다. “내가 누군지 맞추면 줄게” 라모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합니다. “세라라마” 사실 단순 순례자가 아닌,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온 승려들이라 고백하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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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14대 ‘달라이라마’를 찾고 있는 승려들이었던 것입니다.라모의 지비은 선대 13대 달라이라마가 입적한뒤,승려들이 기도와 명상에서 암시 받은 위치임 ‘암도’에 있었으며, 이미지에 발현한 ‘찌그러진 물통’또한 라모의 집에 있었던 것입니다.

승려들은 암도라는 위치와 여러 이미지를 바탕으로 환생한 ‘달라이라마’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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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칠후 그들은 온전한 승려의 모습으로 다시 라모의 집을 찾았고 승려들은 가지고 온짐을 풀었고  이것들은 오래된 골동품과 타베트 불교의 물품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넓게 펼쳐 놓았고  3살의 어린 라모가 다가 옵니다. 승려들은 지켜만 보고 이었고 라모의 부모님또한 독실한 티베트 불교 신자였기에  승려를 따라 침묵을 지켰습니다.

라모는 마치 돌잡이를 하듯 유심히 물건들은 살펴보다 하나하나 골라내기 시작했고 라모는 물건들은 골라잡아내며 “내꺼야” 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물건들은 모두 선대 ‘달라이라마’가 사용했던 물건들,그리고 관계없는 물건들을 무작위로 섞어 놓았던 것이며  승려들은 라모가 선대 ‘달라이라마’의 물건을 정확히 골라내는지 테스트를 하는 중이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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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쿤둔’ 출저

라모는 여러개의 물건을 골라냈고 정확히 그것들은 선대 ‘달라이라마’의 것들이었습니다.또한 승려들은 어린 라모의 눈높이에 맞춰  선대 ‘달라이라마’가 아니면 대답하지 못할  아주 개인적인 질문을 했고  라모는  정확히 그질문에 대답을 하게 됩니다.

승려들은 두손을 모아 합장을 하였고  승려들은 라모에게 허리를 숙여 “쿤둔”이라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얼마 후 라모는 티베트 불교의 최고 수장이자,티베트의 종교, 정치적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됩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라모는 가족들과 함께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떠나게 됐는데 라모의 가족들은 새집에 머물렀지만 라모는 가족을 떠나, 이제 ‘달라이라마’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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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라모는 가족들과 떨어져 ‘달라이라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여름에는 여름궁전이라 불리는 ‘노블링카’에서 시간을 보내고 겨울에는 겨울궁전이라 하는 ‘포탈라궁’에서 성장을 하게 됩니다

라모는 13대 ‘달라이라마’의 영혼을 계승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임에는 다름이 없었기에 종종 밤이 될 때면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 여타 어린아이들처럼 어머니를 찾으며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고 합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라모는 10살이 되기 전까지 승려들 사이에서 불교 대학원 박사과정의 수준으로 교육을 받으며 소위 말해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됩니다.

1944년 14대 달라이라마 라모는 10세가 됩니다. 티베트 불교에는 ‘신탁승’이라는 승려가 있는데 ‘신의 말씀’ 혹은 ‘하늘의 말씀’이라 하는 신탁을 받아 .달라이라마.에게 미래를 점쳐주고 티베트의 흥망성쇠를 예언하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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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승은 상원과 같은 위치로 티베트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신탁을 내릴 때면, 17kg에서 20kg까지 나가는 관을 쓰고 20kg 정도 되는 옷을 입으며 하늘의 말씀을 전하는데 일반인이라면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14대 .달라이라마 .당시 신탁승은 ‘네충’이라는 승려였는데, 네충은 10세의 어린 라모에게 다음과 같은 신탁을 내립니다.

“선대의 경고에 유의해야 한다.” 신탁승 네충의 불길한 예언에 라모는 13대 .달라이라마.가 남긴 편지를 읽게 됩니다.

그 편지는 전대 .달라이라마.가 후대의 .달라이라마.에게 쓴, 즉 자기 자신에게 남겨준 편지였죠.

편지 내용은 ‘티베트’의 암울한 미래가 명확하게 적혀있었습니다.

‘티베트는 향후 정치적, 종교적 핍박이 있을 것이다.’ ‘사찰이 파괴되고, 약탈을 당할 것이다.’

‘승려가 죽임을 당하고 쫓겨날 것이다.’ ‘티베트인들은 노예가 되어 거지처럼 이역을 떠돌게 되리라.’

‘세월이 더디게 흐르고, 고통과 두려움은 극심할 것이다.’이 편지는 실제로 존재했던 편지이며, 이 외에도 티베트에 대한 자세한 예언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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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면, ‘달라이라마’가 자신의 나라 ‘티베트’를 잃고서 떠돌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담겨있었죠 그리고 몇 년 후 신탁승과 13대 ‘달라이라마’의 경고대로 ‘티베트’와 14대 ‘달라이라마’는 불안과 고통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1945년 라모가 11세 때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하게 되고 전쟁의 승리를 거머쥔 중국에선 자국의 패권을 쥐기 위한 내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내전에서 승리를 하게 된 중국의 ‘마오쩌둥’은 그때부터 ‘티베트’는 원래 중국의 땅이었다며, ‘티베트’를 침략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착수합니다.

‘마오쩌둥’은 세 가지 안을 ‘티베트’에 보내게 됩니다.

첫 번째 ‘티베트는 중국 땅의 일부이다.’

두 번째’중국이 티베트를 수호한다.’

세 번째’티베트의 외교와 통상은 중국이 관장한다.’

‘티베트’ 인민의 해방이라는 명목 아래에 종교에 의해 기술적으로, 문화적으로 낙후된 ‘티베트’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통보였습니다.

라모는 여전히 어린 나이였지만 14대 ‘달라이라마라’는 무거운 자리에서 ‘티베트’를 책임져야 했고 중국의 일방적인 세 가지 안을 모두 거부하게 됩니다.

그러자 중국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본격적으로 티베트를 침공하게 됩니다.무려 8만 명이라는 어마 무시한 숫자의 인민해방군이 티베트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라모는 어떠한 반항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럴 힘이 그에게는 없었죠 라모는 중국에 대항할 아무런 힘이 없는 자신을 탓하며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기도 하였습니다.

“혹시 나를 최초에 발견한 승려 ‘레팅이 “14대 달라이라마로 나를 잘못 찾은 건 아닐까?”

14대 ‘달라이라마’ 라모는 평소 우호국이라 생각하였던 영국과, 인도, 네팔과 미국에 사절단을 보내 도움을 요청합니다

‘티베트’가 독립국임을 국제사회가 인정해 주길 바랐던 것이었죠 천진한 라모는 전 세계가 ‘티베트’의 상황을 알아주길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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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외엔 라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죠 후에 각국에 파견된 사절단이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영국과 인도, 네팔과 미국, 심지어 UN도 티베트의 사절단을 만나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라모는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까지 받기 시작합니다. 중국이 라모의 친형을 시켜 암살을 지시한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14대 ‘달라이라마’의 고향은 중국과 인접한 ‘암도’에 있었기에 ‘중공군’에 의해 먼저 점령당한 ‘암도’에 있던 라모의 친형은 중공군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받게 됩니다.  동생인 라모를  죽이라고 …

그렇게 국제사회에 철저히 외면받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기 시작한 라모는 두려움과 무력감에 휩싸이며 말합니다.

“이제 고요는 깨어졌다.” 결국 자신의 나라 ‘티베트’를 위해 홀로 싸울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죠 라모는 결국 본인이 직접 ‘마오쩌둥’을 만나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나이 15세였습니다. 그렇게 라모는 대승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중국 베이징에 도착합니다.

드디어, 14대 ‘달라이라마’는 ‘마오쩌둥’을 만나게 됩니다 무시무시한 괴물과도 같을 거라 생각했던 ‘마오쩌둥’은 생각과는 다르게 매우 인자하고 젠틀했으며 어리고 왜소했던 ‘달라이라마’와 다르게 모든 일에 능숙하고 어른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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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은 어린 ‘달라이라마’를 환대하며 매우 친절하게 그를 대해주었습니다 ‘마오쩌둥’은 말합니다

“티베트는 위대한 땅이지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때 중국을 통치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낙후되었으니, 우리가 돕겠습니다.

“20년만 지나면 티베트는 우리보다 더 잘 살 수 있고 오히려 우리 중국을 돕게 될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도 불자셨습니다.”

“계급을 부정하고, 부패를 질타하고,이처럼 정치와 종교도 어느 선까지는 융화될 수 있습니다”

"14번의 환생, 여러분이 몰랐던 '달라이라마'의 충격적인 인생"

마오쩌둥을 만나기 전까지 매우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던 라모는 안심하게 됩니다.15세의 어린 청소년에게 이와 같은 말들은 매우 달콤하게 들렸겠죠.

그렇게 중국과 마오쩌둥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 무렵 ‘달라이라마’가 ‘베이징’에 머문 마지막 날 ‘마오쩌둥’은 다시 라모를 부릅니다.

그때 ‘마오쩌둥’ 은 강하게 강하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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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을 잘 이해합니다.하지만 이건 알아야 하오.”종교는 아편입니다.”

“종교는 독입니다.” “인민을 나약하게 만들죠.” “종교는 마약처럼 정신과 사회를 흐리게 하고” “인민을 미혹하게 합니다.”

“티베트인들은 종교에 절어서 열등 국민이 되었소.”

그렇게 마오쩌둥의 말을 뒤로하고 달라이라마는 티베트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온 티베트의 상황은 처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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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 들에 의해 문화는 깨어졌고 그들의 탄압은 더욱 가혹해졌습니다.시간이 흐르며, 중국은 더욱 잔인해졌습니다. 인민군들은 사원들을 폭격했고 티베트인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티베트 600만의 인구 중 100만 명이 죽게 되고 중국은 티베트의 사원 6,000개를 완전히 파괴해 버립니다.

티베트 불교의 승려로 교육받고 자란 ‘달라이라마’는 이 모든 것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었습니다.그렇게 고통의 세월이 계속되고 1959년 14대 ‘달라이라마’ 라모는 25세가 됩니다.

중공군의 티베트에 대한 무력의 탄압과 ‘달라이라마’에게 생명의 위협이 계속되던 시기에 몇만 명을 훌쩍 넘는 티베트 국민들은 ‘달라이라마’를 지키기 위해 포탈라궁 앞에 24시간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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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하루하루는 계속되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신탁승’의 신탁 또한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탁승은 이와 같은 신탁을 내립니다 “강을 건너야 하나 배가 없다.”  “그러니 내가 배를 주겠다 “

“가라, 오늘 밤 떠나라.” 그렇게 대신들은 ‘달라이라마’에게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망명’할 것을 제안합니다.

중공군의 폭격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더 이상 ‘티베트’ 국민들의 희생을 감수할 수 없었던 ‘달라이라마’ 또한 자신의 나라를 떠나서라도 ‘티베트’국민들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탁승’은 ‘달라이라마’의 ‘망명’길을 직접 지도로 그려주게 됩니다. 하지만 ‘신탁승’이 그린 길은 중공군의 진지가 주둔해 있던 곳이여서 그곳으로 지나서 가기는 불리한 조건 이였습니다.하지만 놀랍게도, 신탁승이 신탁을 내린 그날 밤 중공군의 진지가 이동을 했고, 길이 열리게 됩니다

밤이 되었고 낡은 군복으로 위장을 한 달라이라마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 3주 동안의 긴 여정을 떠납니다.

그렇게 그는 히말라야를 넘어 북인도 다람살라로 향하게 되죠 ‘달라이라마’의 ‘망명’길엔 약 100명의 사람들이 함께했고 라모는 망명길 중 열병을 앓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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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그들의 일행은 인도 국경에 다다르게 됩니다 인도 정부는 미리 비밀리에 연락을 받은 상태였고 국경을 지키던 군인들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군인은 ‘달라이라마’에게 묻습니다 “감히 여쭈오니, 그대는 누구시옵니까?”

라모는 대답합니다 “보시다시피 미천한 비구일 뿐이오.”

군인은 다시금 묻습니다”당신이 부처시옵니까?”

라모가 답합니다 “나는 그림자일 뿐이오.” “물 위에 비친 달처럼,”

“나를 통해서 그대들 자신의 선한 그림자를 보기 원할 뿐이오.”

그렇게 달라이라마의 인도 망명은 성공하게 되었고 14대 ‘달라이라마’ 라모는 북인도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워, 1959년부터 지금 현재까지도 티베트의 정신적 수호자라는 칭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4대 ‘달라이라마’는 저명한 비폭력 운동가로 1987년 그가 55세가 되던 해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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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랜 전통을 가진 티베트 불교의 수장이자 종교인임에도 매우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1년 그가 67세가 되던 해엔 티베트 망명 정부의 초대 총리를 선출하여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꾸준히 ‘티베트’의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데 결국 티베트의 독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단 걸 깨달은 그는 더 이상 티베트의 외교적, 군사적 독립은 추구하지 않으며,그나마 티베트의 자치권을 확대하기 위한 요구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14번의 환생을 거쳐온 달라이라마, 그는 언제까지 환생을 지속할까요?

놀랍게도 이번 14대 달라이라마가 직접 ‘더 이상의 환생은 없다.’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14번의 환생, 여러분이 몰랐던 '달라이라마'의 충격적인 인생"

‘달라이라마’가 티베트 불교의 최고 수장이라면, 제2의 지도자에는 ‘판첸라마’라는 존재가 있는데 .판첸라마. 또한 ‘달라이라마’처럼 환생을 거듭하는 존재입니다.

1989년 10대 ‘판첸라마’가 사망하자, 14대 ‘달라이라마’는 ‘게둔 초에키 니마’라는 소년을 다음 11대 .판첸라마.로 지명했는데 ‘게둔초에키니마’라는 소년은 다음 ‘판첸라마’로 지명된 지 단 3일 만에 가족들과 함께 중국 정부에 의해 납치가 되었고 지금까지 행방불명에 있습니다.

"14번의 환생, 여러분이 몰랐던 '달라이라마'의 충격적인 인생"

그리고 얼마 안 가,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인정한 ‘기알첸 노르부’라는 소년이 진짜 11대 판첸라마라며 주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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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부가 ‘판첸라마’라고 주장하는 그 소년은 중국 공산당 정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로 14대 ‘달라이라마’가 자신이 죽고 나서 또 다시 환생을 한다고 해도 중국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직접 그들이 세운 인물을 15대 ‘달라이라마’로 주장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 뻔히 보이기에 14대 ‘달라이라마’는 자신을 끝으로 더 이상의 환생이 없을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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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달라이라마 라모는 지금도 ‘티베트’로 돌아갈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독백

“나의 적도 무로 돌아갈 것이며 “. 나의 벗도 무로 돌아갈 것이며, 나 역시 무로 돌아갈 것이니 “만사가 무상하도다 “

만사가 덧없음이며, 기뻤던 일 모두 다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한 번 간 것은 ‘다시 오지 않는 법’ 묶인 자 풀어주고,

갇힌 자 석방하고, 얽매인 자 해방시켜, 무 생명을 남김없이 열반으로 이끌리라. 부처님도 남의 죄를 씻을 수 없으며

남의 고통을 대신 덜어줄 수 없으며, 대신 깨우쳐 줄 수도 없나니, 중생은 오직 진리를 통해서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이것이 궁극의 진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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