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부유해진 국가들은? Top10

국가의 부는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는데 몇십 년 전만 것을 올라가 봐도 잘 살았던 국가가 빈국으로 전락한 사례가 많았고 반대로 빈국이었음에도 경제발전의 장 요소를 극복해 부국으로 우뚝 선 사례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중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경제 발전을 이뤄내 한때는 가난에 허덕였지만  20세기 이후 현재 부유해진 국가들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1위부터 10위까지입니다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0위  ‘사우디아라비아’ 

1930년 대 초반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급자족의 경제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습니다

농업 외의 수익이라고 해야 ‘사우디아라비아 ‘로 찾아오는 순례자들로부터 얻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의 ‘스탠더드 오일 컴퍼니 ‘와 ‘석유 양허 협정’을 체결한 이후 1938년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어 ‘사우디아라비아’는 흔한 말로 대박을 맞이하게 됩니다.

게다가 1951년에는 중동 최초로 ‘해상유전’ 도 발견됐는데 육상과 해상 모두 석유 생산이 이루어지며 생산량이 하루 ‘백만 배럴’에 달했습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은 1970년대 ‘오일쇼크’로 한 번 더 경제 부스터를 장착하게 됩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유가 하락으로 경제가 주춤했지만 이후 유가는 반등에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를 중심으로 사우디 정부는 과거 자원에 의존하는 경제 위험성을 체감한 터라

현재는 ‘사우드 비전 2030 ‘이 말 해주듯 경제의 다각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9위 ‘스페인 ‘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은 많은 인명 피해를 불렀지만 동시에 스페인 경재를 초토화시켰습니다.

또한  스페인 내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추축국 친화적인 정책으로 인해 종전 후 ‘마셜 플랜 ‘에서도 제외되었고 ‘프랑코 정부’는 자급자족의 경제를 추구하여 스페인 경제는 고립이 되고 맙니다.

당연히 1950년대 초까지 스페인 경제는 최악이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프랑코 정부’가 태도를 바꾸면서 ‘스페인’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가능했고 이에 대대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1961년에는 OECD 회원이 될 정도로 ‘스페인’은 고립에서 탈피해 개방을 이어갔습니다.

‘스페인’ 경제는 점점 ‘자유시장경제’와 되어 ‘산업화’를 달성했는데 이는 1959년부터 1974년까지 ‘스페인’의 경제 성장률이 일본 다음으로 높았다는 결과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의 위기도 있었고 2010 년 전후로 공황 수준의 경제 침체도 있었지만 독재를 벗어난 민주주의 바탕의 정치적 안정은 경제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졌습니다.

8위 ‘브루나이’

20세기 초만 해도 ‘브루나이’는 고무를 수출하는 수준의 산업을 영위했을 정도로 극심하게 가난한 국가였습니다.

빈곤율도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1926년 세리아 강 근처에서 두 사람이 우연하게 기름 냄새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탐사를 통해 1929년 브루나이는 세리아에서 최초로 석유 시추에 성공을 하게 됩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에게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석유는 ‘브루나이’ 경제에 엄청난 파급을 불러왔고 이는 전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브루나이’의 국가 전체를 탈바꿈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각종 인프라가 개선되었고 교육시스템은 선진화되었으며 공중보건 시스템 또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액화 천연가스’ 매장의 확인과 1970년대 오일쇼크로 유가가 상승하자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며 ‘브루나이’의 GDP는 급격히 상승을 이뤄내기도 합니다.

198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브루나이’는 엄청난 ‘자원’으로 독자적인 경제를 이루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유가 등에 따라 경제 등락이 존재한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현재 ‘브루나이’는 동남아시아의 최고 부국 중 하나고 주거, 교육, 의료의 복지혜택은 북유럽을 능가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7위  대한민국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은 원래 가난했던 나라를  더욱 나락으로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경제가 발전을 합니다.

특히 한국의 대기업들은 정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으며 높은 성장을 이끌었는데, 이러한 결과 1970년대 경제성장률은 평균 약 9.0% 1980년대에는 3저 호항에 힘입어 평균 약 9.7%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대 IMF 사태 때 잠시 주춤했지만 2000년대 초반 벤처 붐 시기를 거치면서 다시금 재도약하여 오늘날 G7 국가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한편 2021년 기준 한국의 GDP는  USD 35,196 이었는데  이는 1960년 USD 158 와 비교했을 때 무려 이백이 222.7배 높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6위 카타르

1916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카타르’는 당시만 해도 어업 중심의 경제로 매우 가난한 국가였습니다.

생활여건도 최악이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 탐사 시작 이후 1940년 ‘두 칸 유전’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카타르에도 변화의 기회가 생기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탐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1949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며 앞선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국가 전체에 ‘오일머니’가 급증한 것입니다.

이에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카타르’의 생활수준을 높여주었고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을 때도 경제적으로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산업기반시설’ 과 ‘인프라’는 과거보다 더 완벽해졌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카타르의 자원경제는 절정에 이르렀는데 다만 자원에 의존하는 경제이기에 1980년대에는 낮은 유가로 경제적인 침체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다시 ‘카타르’ 경제는 반등했고 최근에는 석유와 더불어 ‘액화천연가스’의 수출도 활발한 상태입니다.

카타르 정부도 자원 의존도가 높은 경제 한계를 경험했기 때문에 ‘비자원 분야’의 경제 다각화를 꾀하고 있기도 합니다

5위 싱가포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싱가포르는 혼돈에 상태였고 공산주의자들의 폭동 도 더해져 불안정했습니다.

때문에 ‘싱가포르’는 1961년 말레이시아와 합병되었고 이는 영국 정부도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 긍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합병 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문제에 이견으로 갈등이 극심했고 급기야 1964년 ‘싱가포르’에서는’유혈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말레이시아는 1965년 ‘싱가포르’를 다시 분리 독립시키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당시 ‘싱가포르’는 ‘실업률’도 높았고 인구의 1/3이 빈민가에 살고 있었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또한  영토도 작았고 자원도 없었기 때문에 미래는 어둠기만 했는데요  이때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리콴유 ‘입니다

그는 부패를 척결하고 세금을 내리고 노동조합 또한  허용하지 않으며 외국인 투자를 유치를 합니다 또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했고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외국인 투자가 급증했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이뤄낸 것입니다.

이렇게 1970년대 이후 ‘싱가포르’의 생활여건은 매우 개선되었고 지금까지도 ‘싱가포르’의 경제는 안정적으로 성장하며 기업 친화적이고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위 노르웨이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노르웨이’에 경제는 유럽에서 변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수력 발전’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산업을 추진해 경제 개선의 가능성을 열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위기를 맞이했지만 전후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 덕에 다시 반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노르웨이’ 경제의 변환점 이 된 사건이 1967년 있었는데 바로 북해에서 ‘석유’를 발견한 것입니다.

1971년부터 매장량이 상당했던 유전에서 석유를 생산한 ‘노르웨이’는 마침 오일쇼크로 유가마저 상승함에 따라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게 됩니다.

덕분에 ‘노르웨이’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추진하고 있었던 사회민주주의 개혁은 급성장하게 됩니다.

물론 ‘수산업’이나 ‘해운 산업’ 등의 세계적인 ‘비자원 분야’산업도 존재하지만 역시나 석유 덕에 현재 ‘노르웨이’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중 하나로 성장한 상황입니다

3위  스위스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지리적 환경, 과 적은 인구, 농업 중심의 산업은 19세기 중반까지 스위스를 별 볼일 없는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자원도 기대할 게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스위스는 금융업과 관광업으로 경제개발의 기틀을 마련했고 정책적으로도 경제 발전은 우선시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스위스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세계대전의 생산시설 피해에서도  비껴갈 수 있었고  오히려 독일부터 영국의 이르기까지 유럽 각국에 무기를 수출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며 더 높은 경제성장을 이뤄내게 됩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경제의 저성장이 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서비스산업과 제조 산업이 발달하며 국가의 부를 더 키웠습니다.

특히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업’을 비롯해 제약산업, 시계 산업, 관광업 등 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2위 아일랜드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일어난 독립 전쟁으로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합니다.

아일랜드의 경제는 농업 중심이었기 때문에 상당이 취약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일랜드 경제는 1932년부터 ‘션 레무스’가 보호주의를 도입하여 더욱 침체가 됩니다.

1945년부터 1960년까지 유럽 경제는 호황이었지만 아일랜드는 이에 편승하지 못했고 오히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아일랜드를 따랐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958년 재무부 장관이었던  ‘휘태커’는 아일랜드의 경제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게 됩니다.

보호무역을 종식하고 경제를 농업에서 산업과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해 일자리 창출로 도약합니다.

아일랜드는 점차적으로 영국 경제 의존도를 낮췄고 1990년대에도’ 첨단산업’의 육성을 추진했는데 이러한 역량이 이 축적되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켈트 타이거 ‘로 불리는 ‘아일랜드’의 경제 호황 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1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였고 2000년대 초반과 2008년에 위기도 있었지만 꾸준한 외국인 투자 증가와 소비 지출의 증가는 아일랜드의 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1위 룩셈부르크 

바다에 인접하지도 않은  내륙 국가인 ‘룩셈부르크’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를 하고 있었는데요.

인구의 33% 정도가 해외로 이주할 정도로  국민들의 삶은  가난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19세기 중반 척박해 보였던 영토에서 철광석 발견되고 1876년 영국의 야금술이 도입되면서 룩셈부르크에서 가난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주요 철강 생산국이 되면서 ‘룩셈부르크’에 경제는 급성장했는데 세계대전에 위기도 있었지만 ‘철강산업’은 대체로 20세기 초중반 ‘룩셈부르크’에 경제성장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이쯤 되면 다른 국가에서는 그동안의 성장에 안주할 수도 있었겠지만 ‘룩셈부르크’는 1960년대에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업을 육성해 결실을 거뒀습니다.

현재 서비스업은 룩셈부르크 GDP에 비중이 87%에 달하고 특히 금융업은 40%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이러한 ‘룩셈부르크’ 금융업의 경쟁력은 ‘런던’과 ‘취리히’에 이어서 세계 세 번째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유튜브 동영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