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남성들 줄줄이 ‘목숨’ 끊게 만든 당대 ‘최고 미녀’의 정체

1870년대, 페르시아의 ‘카자르 왕조’는 지금의 이란 지역에 있었고 아프가니스탄까지 영토를 넓혔었습니다. 수도가 ‘테헤란’이며 1930년 식민지가 될 때까지 188년간 유지된 나라입니다.

페르시아 최고의 미녀 카자르 공주 당시 페르시아에서는 세계 최고의 미녀로 꼽혔던 페르시아 공주와 문화를 통해 미의 기준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역사상 세계 최고의 미녀라고 한다면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가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문헌을 연구해 보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미녀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19세기 남성들 줄줄이 '목숨' 끊게 만든 당대 '최고 미녀'의 정체


이것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지만 사랑에 빠져 자살까지 하게 만든 미녀를 소개합니다.

페르시아를 지배했던 카자르 왕조의 타지 살타네 공주입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줄을 설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청혼한 남성만 145명이 넘었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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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13명은 청혼을 거절 당한 것을 비관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타지 공주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미녀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는 점. 타지 공주의 몸은 풍만함을 넘어 다소 뚱뚱했고, 얼굴 또한 둥글도 넓적했다고 전합니다. 

아래의  사진중 가운데 계신 분 바로 전설의 미녀라 불리던 타지 공주 입니다.

19세기 남성들 줄줄이 '목숨' 끊게 만든 당대 '최고 미녀'의 정체

페르시아 나시르 앗딘 샤( 1831-1896) 왕의 11남 10녀 중 8번째 딸이자 당대 최고의 미모를 가진 공주 ‘타지 에스 살타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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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미모를 지닌 그녀는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어서 당대 최고의 시인 ‘아리프 카즈빈’은 공주를 뮤즈로 삼아 시를 쓰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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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인의 기준은 남자가 안았을 때 뱃살 때문에 팔이 다 둘러지지 않을 만큼 뚱뚱해 하고 몸에 털이 많아야 미인이라고 합니다.

공주가 콧수염을 기르고 짙은 일자 눈썹을 그린 이유가 이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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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인 ‘나시르 앗딘 샤 왕’은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페르시아’ 최초로 우편제도를 도입하고, 신문을 발행하고 근대적 교육기관을 성립한 의식이 깨어있는 왕이었습니다.

덕분에 딸들과 후궁들도 신식교육을 받았고 상류층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콘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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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발레 튜튜같은 치마가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로 당대 미녀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는 왕의 하렘에 모인 여자들이 모두 저 치마를 입고 공주의 비슷한 모습을 한 걸 보면 공주가 그 당시 미의 기준에 적합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19세기 남성들 줄줄이 '목숨' 끊게 만든 당대 '최고 미녀'의 정체

이렇듯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모두 아름다웠던 ‘타지 에스 살타네’ 공주. 그녀는 1936년 5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현대의 미적 기준과 맞지 않을지라도 그녀 내면의 아름다움은 그 어느 누구도 함부로 평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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