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벌써 8년 차인 우리 부부는 결혼 초부터 잦은 다툼과 갈등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이나마 안정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다투는 일이 잦았고 결국 아내는 이혼을 원했습니다.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 그래… 알았어 제발 그만해”
“당신 마음대로해 나도 이제 지친다 지쳐”
저도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회사생활과 집안일로 지칠대로 지쳐 있었던 상황이라 그날은 아내의 말에 화가나서 순간 다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 부부는 각방을 쓰게 되었고 서로 침묵하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실망은 점점 커져만 갔고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
사실 진심으로 이혼하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 어린 아들 녀석이 눈치가 이상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부터 점점 아이가 말이 없어지고 짜증을 내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반항하는 아들을 보며 아내는 더욱 날카롭게 행동했고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이 더욱 나빠져갔고 아이는 우리 부부 중간에서 더욱 반항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은 찜질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든지 말든지 이제 신경도 안 쓰더군요.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부부 사이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거 같았습니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하루는 퇴근길에…
노점상에서 과일을 팔고 있던 아줌마가 저를 부르더군요.
“아휴~ 총각! 총각~
이거 떨이니까 다 사가요”
“네? 저 총각 아닌데요…”
“진짜?! 너무 젊어 보여서
총각인지 알았네~
이거 진짜 싸게 줄 테니까
사주면 안 될까?”
“아… 네… 그럼 남은 거 다 주세요”

어떤 과일 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다 사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주방 탁자에 올려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아내가 내가 사 온 귤을 까먹고 있더군요.
“귤이 참.. 맛있네..”
라고 말하며 방으로 쓱 들어갔습니다. 순간 제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것과 결혼 8년 동안 내 손으로 귤을 한 번도 사들고 들어간 적이 없었단 사실을요….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뭔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연애할 때 길 가다가 아내는 귤 좌판상만 보이면 꼭 천 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던 기억이 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져서 내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어쩌다 시골집에 갈 땐 귤을 박스채로 사들고 가는 내가 아내에게 8년 간이나 몇 백 원 안 하는 귤 한 개를 사주지 못했다니… 마음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게 되었다는 걸 알았죠. 아이 문제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반면 아내는 나를 위해 철마다 보약에 반찬 한 가지를 만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많이 신경 써 줬는데 말이죠. 그 며칠 후에도 늦은 퇴근길에 보니 그 과일 좌판상 아주머니가 보이더군요.
“어? 총각 같은 아저씨 또 오셨네”
“하하.. 아 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또 귤 한 봉지를 샀습니다. 오다가 하나 까먹어 보았더니 며칠 전 아내 말대로 정말 맛있더군요. 그리고 살짝 주방 탁자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아내는 이미 몇 개 까먹었나 봅니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던 아내가 저에게 입을 열었습니다.
“이 귤.. 어디서 샀어요?”
“응 전철 입구 근처 좌판에서..”
“귤이 참 맛있네”
몇 달 만에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 입에도 몇 알 넣어주고 그리고 아이 시켜서 자기가 직접 깐 귤을 저한테도 건네주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 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놓은 내 모습과 또 한 번 비교하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뭔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생겨남을 느낄 수 있었죠.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보통 제가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사이가 안 좋아진 후로는 아침을 해준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저는 그냥 갈려고 하는데 아내가 날 붙잡았습니다. 마지못해 첫 술을 뜨는데 목이 메어 밥이 도저히 안 넘어가더군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더군요.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한마디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아내는 그렇게 작은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작은 일에도 감동받아 내게로 기대올 수 있다는 걸 몰랐던 난 정말 바보중에 상 바보였습니다. 간 아내에게 냉정하게 굴었던 내 자신이 후회스러워 마음이 무거웠고요…
이후, 우리 부부의 위기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은 싸우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귤이든 뭐든 우리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