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분식점 을 운영하는 50대 여성입니다 초등학교 앞 귀퉁이에서 시작한 장사가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0년 전부터 초등학교 앞에서 분식점을 운영했습니다 요즘처럼 좋은 인테리어도 없고 보기에는 허름한 그런 가게였습니다.
분식점 문을 열 당시에도 근처에서 그 건물이 가장 월세가 쌌습니다 허럼한 건물이라도 내가 부지런하게 쓸고 닦아 깨끗이 하자라는 생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손님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먹고 살 정도만 있었습니다.
남편이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먹고 살길이 막막해 분식집을 하게 되었죠.
남편의 빈자리를 11살 딸이 채워주었습니다. 저는 딸아이를 보고 견디면 살았습니다.

저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와서 가게를 운영하는 방법도 몰랐고 그냥 위생에만 엄청 신경을 썼습니다.
매일매일 쓸고 닦고 하면서 음식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는 거랑은 전혀 달랐습니다.
여러 사람의 입맛에 맞춰야 하고 이것 저것 신경쓸게 많았습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열심히 하는데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가게 월세 나고 나면 겨우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힘들게 살았습니다. 딸아이에게 좋은 음식 새 옷도 사주지 못할정도로 살아가는게 힘이 들더군요.

그러다 보니 어느덧 20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딸은 사춘기 반항 한 번 없이 잘 자라 주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편의점 이랑 음식점 서빙 같은 알바를 하기 시작하면서 본인 용돈이나 책값을 벌어 쓰더군요.
학원에도 보낼 수 없는 형편이라 딸에게 미안했습니다.
아빠가 살아 있었다면 다른 애들처럼 공부만 했을 딸이 돈을 번다고 여기저기 알바를 하는 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딸은 대학을 졸업했고 이제 성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딸은 남자친구도 사귀게 될 정도로 훌쩍 커버렸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여전히 생활은 힘들었고 저축한 돈도 없어 딸이 시집이라도 가면 정말 큰일이라는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던 어느 날 가게 주인이 재건축을 한다며 가게를 비워달라고 하는 겁니다.
당장 다른 곳을 갈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먹고살아야 해서 가게를 그만 둘 수도 없는 형편이고 그저 하늘만 원망했습니다.
하루는 딸이 엄마 갑자기 이번 주말 저녁에 우리 외식할까 하더군요
심란한 마음에 무슨 외식이냐고 짜증을 냈습니다.
“건물 재건축 한다고 가게 비어 달라는데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딸은 따지듯이 말했습니다.
“엄마 그래도 시간은 낼 수 있잖아”
“엄마는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속으로는 아차 싶었지만 저는 그냥 너나 먹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딸아이에 눈에서는 눈물이 났고 “엄마 나 ‘프러포즈’ 받았어”라고 말하더군요
“지금 남자친구 정말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라 나도 결혼하고 싶어”
“내 친구들도 요즘 하나, 둘씩 결혼해 “
“나도 결혼 좀 하자 엄마” 라며 말하고는 나가 버립니다.
저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딸이 결혼할 나이도 되었고 당연히 축하해 줄 일인데 못난 엄마는 모아놓은 돈도 없고 딸을 시집보낼때 들어갈
돈 걱정부터 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집니다.
참 이기적이고 나쁜 엄마입니다.

딸은 서운했는지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전화도 안받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들어와서는 인사도 안 하고 씻으러 들어가더니 나와서는 자기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서러워서 우는 건지 미안해서 우는 건지 저도 알 수 없는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결혼을 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게 문제는 도통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주변을 다 돌아다녀 봐도 제가 들어 갈수 있는 가게는 없었습니다.
철거 날짜는 다가오고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집을 줄여서 이사를 가야 하는건지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남겨준 이집 하나만큼은 지키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잘 차려입은 남자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떡볶이 한 그릇을 시키고는 먹지도 않고 가만히 보더군요.
옷도 고급으로 입고 이런 음식을 먹어본 것 같지 않았습니다. 떡볶이가 마음에 안 드나 싶어..
손님 음식이 맛이 별로인가요? 다시 만들어 드릴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그냥 오랜만이라 반가워서요. 혹시 저 모르시겠어요? “라고 말합니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여기 졸업생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고는 고맙다고 다시 와줘서.. 그런데 곧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와 버립니다.
그 사람은 왜 가게 문을 닫냐며 물어보더군요.
저는 건물이 이제 재건축을 하는데 다른 가게를 얻기가 어렵다고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별말 없이 떡볶이를 먹더니 잘 먹었습니다. 하며 돈을 내고 나갔더군요.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어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러곤 몇일 뒤 딸아이가 한 남자를 데리고 불쑥 들어옵니다. 바로 가게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 졸업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깜짝 놀랐고 아! 내가 어떤 장사를 하는지 손님인 척 보러 왔었구나 싶어 등골에서 식은땀이 났습니다.
어쩐다 궁상이란 궁상은 다 떨고 얼마나 우리 집을 한심하게 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창피하기도 하고 아무에게나 속 이야기를 해버린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저는 딸이랑 그 남자를 핀잔을 주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다음날 딸이 가게를 정리하고 돌아온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딸은 이야기 좀 하자며 말했습니다.
너 결혼시키고 엄마 늙어서 혼자 살 돈 마련할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며 화를 냈습니다.
시집을 가든지 말든지 네가 알아서 하라고 소리치며 속에도 없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가게에서 한바탕 왔다간 손님들의 접시를 설거지하고 있는데 멀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부부가 들어옵니다.
그래서 주문을 받으려고 하는데 딸아이의 남자친구가 들어서며 저희 부모님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어머님 오늘 제가 그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좀 들어주시면 알될까요? 라고 하더군요.
저는 화는 좀 났지만 그쪽 부모님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었죠 그래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그쪽 부모님이 다시 인사를 건네시더니 제 손을 덥석 잡더군요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남자가 말을 꺼냈습니다.
“어머니 저 어릴 적에 여기 왔던 거 맞아요”
“먼저 와 봤던 거 혹시나 절 기억하시면 인사드리고 다시 따님이랑 뵈려고 했던 겁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어머님”
“오늘은 따님 남자친구가 아니라 제가 감사한 마음을 전하러 온 거에요.”
“어머님은 기억을 못 하시는것 같지만 “
“제가 20년 전에 여기 단골이었거든요”
“사실 그때 따님이랑 같은 반이기도 해서 자주 오기도 했지만 저희 아버지가 지금은 안정되셨지만
그때 좀 힘드셨거든요”

“그래서 집으로 빛쟁이들이 찾아와 나동을 부릴때가 자주 있었고 그때마다 엄마는 절 밖으로 내 보내셨어요.”
“그런데 밖에 나와도 갈 데도 없고 시간은 지나서 배는 고픈데 돈은 없었거든요”
“그때 어린 생각에 가짜 돈을 만들어서 사 먹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책 가방에 있는 공책을 찢어 제 딴에는 그럴 싸하게 여기로 왔죠.”
“돈도 없으면서 떡볶이를 시키고서는 엄청 맛있게 먹고 가짜 돈을 내밀었는데 어머니께서 웃으면서 절 그냥 보내주셨어요”
그제야 기억이 났습니다.
마르고 작은 아이가 매번 가짜 돈을 가지고 와서 당당하게 떡볶이를 사 먹었거든요. 저는 아이가 딱해 보여 속아준 거였습니다.
남자 아이는 이사를 가게 되었고 너무 미안한 마음에 항상 마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딸이 일하는 미용실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어머님 생각이 나서 연락을 주고받다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저는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그렇게 냉대를 하고 나쁜 놈으로 몰아갔으니 말입니다.
나이는 어디로 먹은 건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딸아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집을 팔아 시집을 보냈고 저는 작은 원룸을 얻어 직장을 다니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딸을 너무 의지하고 살았던 엄마의 미련한 집착이었고 돈은 핑계였습니다. 어른으로서 어른답지 못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