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가 싸오신 김밥 도시락”을 새엄마가 보는 앞에서 계곡물에 쏟아버렸다! 성인이 되어 새엄마가 건넨 편지에 참았던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습니다.

딸이 아직 12살 밖에 안됐다며? 그런가  봐요 남자애도 중학생이라던데 애 아빠 혼자 어떻게 키운데요.. 불쌍해라…

이른 봄, 엄마는 나와 오빠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당시 아직 어린 우리 남매에게 엄마는 아빠에게 부탁한다며 마지막 길까지 눈물을 지으셨다.

"새엄마가 싸오신 김밥 도시락"을 새엄마가 보는 앞에서 계곡물에 쏟아버렸다! 성인이 되어 새엄마가 건넨 편지에 참았던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습니다.

남겨진 건 엄마에 대한 추억과 사진 한 장 엄마는 사진 속에서 늘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엄마의 몫까지 채워가며 우리 남매를 길러야만 했다.

그게 힘겨워서였을까…

중학생이 되던 해 여름.

“애들아 나와봐”

“이제부터 너희 엄마 될 분이셔”

“엄마라고 불러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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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고 부르라는 아빠의 말.. 하지만 우린 따르지 않았다.

결국 생전 처음 겪어보는 아빠의 매 타작이 시작되었고

“어 엄..마..”

오빠는 어색하게 엄마라고 겨우 목소리를 냈지만 난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니 부를 수 없었다.

왠지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돌아가신 진짜 엄마는 영영 우리들 곁을 떠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종아리가 회초리 자국으로 피 멍이 들수록 난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그만 좀 해요”

“왜 그래 애들한테 자꾸.”.

“난 괜찮으니까”

“애들 좀 그만 아프게 해요 제발.. 응?”

새엄마의 말림으로 인해 매 타작은 끝이 났지만 어느새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언제까지 죽은 엄마 사진만 붙들고 그럴래?”

“지금 엄마는 불쌍하지도 않아!?”

아빠는 엄마 사진을 버린다며 가져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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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진 때문에 내가 새엄마를 더 받아들이지 않는 거라는 이유였다.

이때부터 새엄마에 대한 나의 반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새엄마는 분명 착하신 분이었다.

그러나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적개심은 그 착함마저도 위선으로 보일 만큼 강렬했다.

난 언제나 새엄마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 해 가을 소풍날

학교 근처 계곡으로 소풍을 갔지만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다.

소풍이라고 집안 식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되고 모두들 점심을 먹을 때 계곡 아래쪽을 서성이이고 있던 내 눈에 저만치 새엄마가 들어왔다

손에는 김밥도시락이 들려있었다.

아마 뒤늦게 이웃집 정미 엄마한테서 소풍이라고 전해 듣고 도시락을 싸오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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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도시락을 건네받아

새엄마가 보는 앞에서 계곡물에 쏟아버렸다.

서… 선영아.. 뛰어가다 뒤돌아보니

새엄마는 손수건을 눈 아래 갖다 대고 있었다.

얼핏 눈에는 물기가 반짝였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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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증오와 미움 속에 중학 시절을 보내고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고입 진학상담을 해야 했다.

아빠와 새엄마는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가까운 인근의 인문고 진학을 원하셨지만 아빠 전 인문계 안 갈 거예요.

새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기 싫었고 하루라도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다.

집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결국 내 고집대로 산업체 학교에 원서를 냈고 12월이 끝나갈 무렵 경기도에 있는 그 산업체로 취업을 나가기로 결정됐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 가방을 꾸리는데 새엄마가 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정말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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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도착해서도 보름이 넘도록 집에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

산업체 공장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낯섦이 조금씩 익숙해져 갈 무렵 옷 가방을 정리하는데 트렁크 가방 멘 아래 검은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누군가 가방 속에 넣어놓은 비닐봉지. 봉투 속에는 양말과 속옷 두벌

그리고 핑크빛 내복 한 벌이 들어있었다.

(가지런한 글씨체..)

(누구지..)

어 새엄마였다.

두 번을 접은 편지지 안에는 놀랍게도 아빠가 가져간 엄마 사진이 들어있었다.

새엄마는 아빠 몰래 엄마 사진을 간직했다가 편지 속에 넣어서 내게 준 것이다.

이제껏 독하게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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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콧물 범벅이 되며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동안 쌓였던 감정의 앙금이 눈물에 씻겨 내렸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그날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첫 월급을 타고 맞은 일요일, 난 홍천행 버스를 탔다.

밤새 눈이 많이 내려 들판에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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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 ..

아니 엄마는… 동구밖에 나와 날 기다리고 계셨다.

빗자루가 손에 들린 엄마 뒤에는 훤하게, 아주 훤하게 쓸린 눈길이 있었다.

새엄마..

그동안 속 많이 상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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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턴 이 내복처럼 따뜻하게 엄마로 모실게요

아직도 말도 못 하고 속말만 웅얼거리는 나를 어느새 엄마의 따뜻한 두 팔이 감싸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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