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때 나의 이야기다.
아내는 33살 딸은 13살 아이는 아내가 데려온 딸이다.
딸 아이는 어린 나이가 아니어서 많이 어색했지만 주말에는 같이 외출하거나 대화를 나눴다.
나는 아내의 딸에게 어색함을 없애보려고 무척 신경을 썼다.
우리는 굳이 따로 자식을 낳을 생각을 못 했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딸을 생각해서였다.
우리에게 아이는 딸 하나로 충분했다.
나의 마음이 전 해진 것인가?
딸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드디어 가족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우리 사이는 친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속도를 위반하고 달려오는 트럭에 받혀 튀겨져 나가.. 아내는 세상에 나와 딸 둘만 남기고 돌아오지 않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 아내가 죽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남겨진 딸과 둘이서 멍하니 있었다.
집에 돌아와 아내가 없는 방을 바라보니 슬픔이 복받쳤다.
나는 이내 소리 내어 울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모르겠다.
가슴엔 구멍이 뻥 뚫렸지만 한 가지 마음이 있었다.

아내가 남기고 간 딸을 자신의 힘으로 키워 보이겠다고…!
친엄마를 잃은 딸은 나보다 더 고통스러울 텐데 강한 척하고 있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생활도 이제는 제법 안정되어 있었고 딸도 집안일을 도우며 씩씩하게 견뎌냈다.
이렇게 우리는 떠나간 아내의 빈자리를 조금씩 메꾸어 갔다.
하지만 친척들은 말이 많았다. 이해도 가긴 했다.
피도 섞이지 않은 29살 남자와 17살 여자가 함께 사는 게 못마땅하게 생각이 되었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커플이라도 이상하지 않는 나이 차이였고 너는 아직 어리니깐.
재혼도 해야 하고 앞날이 창창한데 뭐 하러 남의 아이를 키우냐고 ….그것도 다 큰 아이를 말이다.
하지만 나는 누가 뭐래도 내 딸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내가 남기고 간 소중한 보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키우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은 할 수 없었다.
딸도 이제 와서 발 냄새나는 아저씨랑 어떻게 되겠어라며 웃었다.
당연하듯 말하는 딸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는 소문이 자자했다.
진로 면담 때 학교에 가면 교사들이 수상하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야자로 귀가가 늦어진 딸을 데리러 가면 댁의 학생이 수상한 남자랑 있다고 근처 주민이 학교에 신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지내왔다. 가족이기에…
재혼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만큼 딸에게는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을 선물받았다.
그런 나에게 있어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어느 날 딸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딸은 당시 25살이었다.
내가 아내와 결혼한 나이다. 그때가 생각나서 솔직히 복잡한 심경이었다.
딸이 결혼 상대를 데리고 왔다.
상대는 성실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딸을 보는 눈이 다정했다.
이 남자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나는 안심했다.

분가하기로 한 딸은 서랍 하나하나에 속옷, 양말, 셔츠, 운동복,이라고 써 붙였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빠였나 싶다.
이렇게 딸은 이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러 떠나간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딸은 눈이 부시게 이뻤다.

신부의 편지 낭독
나의 아버지는 아빠뿐이에요.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행복할 수 있었던 건 아빠가 아빠였기 때문입니다.
딸의 편지를 듣고 있자니..필자적으로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힘들었다
정말 힘이 들었다.
그럼에도 아빠라는 선택을 해서 좋았다.
딸의 아빠가 되어서 참 다행이다.
혼자가 된 방은 넓게 느껴졌다.
빈 껍데기가 된 느낌은 부정할 수 없지만 언젠가 태어날 손자를 위해서 힘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