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간호사입니다. 힘든 업무 속에서도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환자를 보살피는 것은 저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한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손발이 부족할 정도로 바빴고 저는 녹초가 되어있었습니다. 오늘은 야간 근무까지 해야 했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힘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호출 벨이 울렸지만 환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저는 놀래서 환자의 병실로 뛰어갔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온 저를 쳐다보고 있는 환자는 이 병동에서 가장 오래 입원 중인 환자분이었고 그 환자분은 저를 왜 이제야 왔냐는 얼굴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 환자분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환자는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저에게 사과를 주면서…
” 미안해요 간호사님 나 이 사과 좀 깎아 주세요.”
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환자분의 옆에는 아내분이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저는 ” 작은 소리로 환자분 죄송하지만 이런 거는 보호자분께 말씀하세요”라고 했고 환자분은 사과를 깎아달라는 눈빛으로 아내분이 혹시라도 듣고 일어날까 봐 조용히 말했어요.
저는 결국 여러 번 부탁하시는 환자분에게 사과를 깎아주었습니다.
사과를 깎고 있는 저를 가만히 지켜보는 환자는 이번에는 먹기 좋게 잘라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 짜증이 났고 그냥 반으로 잘라 버리고 일어서려는데… 다시 환자는 이쁘게 좀 잘라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저는 듣고도 못 들은 척 사과를 건네주고 병실을 나왔습니다.
그렇게 사과를 깎아 달라던 그 환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몸 상태가 악화되어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뭔가 찝찝하다고 해야 할까요?
사과 한쪽 이쁘게 잘라드리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랬는지 후회를 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자들 개인 사정까지 일일이 전부 들어줄 수는 없으니 생각하지 않기로 했죠.
그 후 그 환자분의 삼일장을 치른 그의 아내분이 나를 찾아와서는…
간호사님…
” 사실 그때 깨어있었는데 모른 척했어요.”
” 그다음 날 아침 결혼기념일이라서 선물이라며 사과를 내밀더라고요.”
” 제가 사과를 너무 좋아해서 남편이 손에 힘이 없어 간호사님에게 부탁한 거 같아요.”
” 미안해요 간호사님 남편의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서 모른 척했습니다.”
” 아침에 사과를 주면서 제가 놀라는 표정을 하니까 너무 밝은 표정으로 웃더라고요 남편이…”
아내분은 저의 손을 잡으면서 말하더군요.
” 고마워요… 남편이 마지막 선물하고 떠날 수 있게 해 줘서…”
아내분은 남편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시고 집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솔직히 마음이 쓰였는데 아내분에게 사정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환자분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무심하고 어리석은 짓을 한 것입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세상 전부였던 그 들의 고된 삶을 모르는 척했습니다. 한없이 인색하고 냉담했던 저 자신이 실망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