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통해서 방영되었습니다.
2001년 3월 4일 다세대 주택에서 집주인의 아들인 홍제동 화재 범인 최 씨의 방화로 인해 발생된 화재사건입니다.
홍제동 화재 사건은 소방관 6명이 순직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 참사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날 화재가 접수된 것은 새벽 3시 47분이었고 화재 현장은 소방서와 불과 2km 거리에 있었기에 신고 접수 10분도 안 돼서 서울 서부 소방서를 비롯한 인근 소방차 20여 대와 소방관 46명이 화재 현장에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방 대원들은 차에서 내려 화재 현장까지 먼 거리를 달려야만 했습니다.
좁디좁은 골목에 빼곡히 주차한 불법 주차된 차량들 때문이었습니다.

더 이상 소방차가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어요.
다급한 화재 현장에서 불법주차 차량들의 진입 방해로 인해 치명적인 시간 손실이 발생했던 홍제동 화재 현장은..
소방대원들은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화재 현장으로부터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소방호스를 끌고 달렸고 진화 작업은 시작되었고 구조 대원도 겨우 현장에 도착했지만 열악한 장비로 화재를 진압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조 대원들은 화재 진압대가 먼저 현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다른 진입 경로로 현장에 접근하려 했지만 불법 주차된 차량이 너무 많아 구조차량이 진입할 수 없어 구조 대원들이 25kg이 넘는 장비들을 직접 들고 200미터를 달려서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진화 시작 5분여 만에 집주인 및 세입자 가족 등 7명을 무사히 대피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아들이 안에 있다는집주인이자 홍재동 화재 범인 최 씨 어머니인 선 씨 주장에 이미 화마로 덮인 2층 집으로 소방관 3명이 진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들 최 씨는 발견되지 않았고 집주인 선 씨가 아들이 안에 있는데 왜 구하지 않느냐고 했고 소방관 10명이 당시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재현장으로 아들을 구하기 위해 화염이 가득한 불덩이 속으로 진입합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엄청난 화염과 주택 전체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소방관 10명은 무너진 건물 속에 그대로 매몰되었고 인근에 있던 소방관 3명도 날아온 파편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결국 박동규, 김기석, 김철홍, 박상옥, 장석찬, 박준우 소방관은 건물 잔해 밑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침이 되어서야 화재는 진압되었고 그 모습은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집주인 아들 최 씨가 불길이 치솟기 전 현장을 빠져나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홍제동 화재 사건 실종자 수색작업을 종료하게 됩니다.
방화범 집주인 아들 최 씨는 당시 32세였는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불이 나기 한 시간 전 술에 만취해 자신을 야단치는 어머니 선 씨와 다투다 결국 주먹을 휘둘렀고 어머니는 아들을 피해 위층으로 몸을 숨겼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화가 풀리지 않는 방화범 최 씨는 방안에 있던 생활 정보지에 불을 붙여 방화를 저질렀습니다.
한 방화범이 홧김에 불을 질렀고 홍제동 방화사건으로 인해 아무 죄 없는 6명의 소방관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날의 화재로 인해 아직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001년 3월 홍제동 방화 사건 화재로 순직한 소방관들 중 김철홍 소방관의 책상에 이 시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언제나 집중하여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게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신의 은총으로 제 아내와 아들을 돌보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