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10년 동안 무료 밥차를 운영하셨습니다”시어머니는 돈 벌어서 다 남 좋은 일 시킨다고 엄마를 무시했고 어느 날 기막힌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36살 엄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여자입니다.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살아요 한다고 하잖아요.

저 또한 지금까지도 엄마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1년 전 저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상견례까지 전부 끝난 상태였고 결혼식 날만 기다리고 있었죠. 신랑집은 저희 식당 건너편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엄마는 백반집을 하고 있었고 한 10년 정도 알고 지냈습니다.

자식들이  서로 도와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어요.

신랑 고깃집은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식당을 해서 엄마 식당 반찬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있었고  그걸 잘 알고 있는  시댁에서는  저희 식당과 계약을 했어요.

결혼도 얼마 남지 않았고  신랑 가게에서 저녁이나 먹자고 하시는  시어머니 말에 엄마와 저도 가게를 마감하고  신랑 쪽 고깃집으로 갔습니다.

"엄마는 10년 동안 무료 밥차를 운영하셨습니다"시어머니는 돈 벌어서 다 남 좋은 일 시킨다고 엄마를 무시했고 어느 날 기막힌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의논할 것도 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남자 손님이 들어와서  일거리가 없어 며칠째 밥을 먹지 못했다고  밥 좀 달라고 했어요.

술에 취하신 신랑 시어머니는

“우리는 음식 공짜로 만드나? “

“일도 안 하고 빌어먹는 것들은 밥 먹을 자격이 없지.”

” 차라리 지나가던 개들한테나 주지 ~세상을 쉬게 생각하는  저 사람에게 줄 음식은 없네요.”

백수에게는 줄 음식 없다며 밖으로 내쫓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엄마가 한숨을 쉬더니 말했어요.

“지금 기력도 많이 떨어진 것 같은데 그냥 밥 한 끼 내어주지 그래요.”

그러고는 저희 식당으로 그분을 데리고 갔습니다.

시부모님은 우리에게 소리를 지르며  그런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면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나중에는 술까지 달라고 할 거라며 쓸데없는 행동 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엄마는 그분에게 냉장고에 있던 반찬들과 된장찌개를 끓여  고봉밥을 푼 뒤 음식을 내어주었습니다.

"엄마는 10년 동안 무료 밥차를 운영하셨습니다"시어머니는 돈 벌어서 다 남 좋은 일 시킨다고 엄마를 무시했고 어느 날 기막힌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말했어요.

” 엄마가 항상 뭐라고 그랬지? 돈을 달라는 사람은 거절을 해도 밥 달라는 사람은 꼭 대접해 주라고 얘기했지?”

” 밥 한 끼 주는 거 어려운 거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베푼 만큼 나중에 예상하지 못한 힘들 상황이 생겼을 때 누군가가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거야.”

” 원래 받은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  거란다.”

그동안 아빠 없이 오랜 시간 외롭게 살아오신 엄마의 굽어져 있는 손을 아무 말 없이 어루만지며 엄마의 조언을 가슴속 깊이 새겼습니다.

사실 엄마는  주말마다 동네  노인분들이나 노숙자들에게  무료 밥차를 10년째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10년 동안 무료 밥차를 운영하셨습니다"시어머니는 돈 벌어서 다 남 좋은 일 시킨다고 엄마를 무시했고 어느 날 기막힌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밥을 다 먹은 그분은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돌아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예비 시어머니가 식당 문을 열고 화가 난 표정으로 저희를 무섭게 째려보며 들어왔어요.

소리를 치면서 화를 내셨습니다. 자기는 저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 않아 내쳤는데 받아주면 어떡하냐고 하시면서 시어머님 입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이 튀어나왔고  그로 인해 저는 충격과 상처를 받았네요.

”  딸자식 식당에서 일이나 시키는 주제로 살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좀 더 잘 살아야 할거 아니야.”

”  정신 차리고 현실을 봐! 그 돈 모았으면 30평대 아파트에는 들어갔지! 아직도 둘이서 작은 집에서 살고 있잖아?”

”  그동안 정이 있어서 이 결혼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애들끼리 서로 좋다길래.”

” 눈 딱 감고 결혼 시킨 거지!”

” 솔직히 너희같이 보잘것없는 집안에 누가 자기 자식을 보내겠어?”

” 고생길이 훤한데!”

” 그나마 같이 식당 운영하고 있는 입장이라 이 정도에서 끝나는 건 줄 알아!”

시어머니는  혼자 할 말다하고 가게를 나가버렸습니다. 엄마는 속상해하셨지만 저는 엄마를 위로했습니다.

엄마와 저는 일요일이라 밥차에 음식을 싣고 역으로 향했습니다. 식사를 맛있게 드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엄마는 너무 행복한 표정을 하셨어요.

독고 노인분들은  공병이랑 폐지를 주어서 돈 좀 모았다며  딸 결혼식에 갈 수는 없으니  축하금이라고 주셨습니다.

엄마는  항상  노인분들이 10년을 넘게 밥을 해드렸지만 단 한 번도 돈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10년 동안 무료 밥차를 운영하셨습니다"시어머니는 돈 벌어서 다 남 좋은 일 시킨다고 엄마를 무시했고 어느 날 기막힌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인분들의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노인분들이 적은 편지와 돈 봉투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저희 식당은  날이 갈 수록 번창했지만  시댁 식당은   손님이 남긴 반찬을 재사용하다 걸려서  안 좋게 소문이 났고  그 뒤로 손님 발길이 뚝 끊겨  장사를 못할 정도로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신고가 들어가 벌금도 많이 나왔고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가게가 망한 탓을  엄마와 저에게 돌렸고  장사가 잘 되는 우리가게를 보며 화병이 났는지  우리 모녀를 허구 한날 괴롭히고 있었어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저는 결국 시어머니의  행포에  남편이랑 더 이상  살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합의 끝에 이혼을 하였고 저는 지금  엄마의 장사를 도와서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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