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명절날 가족들이 다 모여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제가 자리를 피하기 위해 일어나고 있었는데요. 역시나 큰엄마가 저를 불러 세웠어요.
“다현아! 어디 가는 거니?”
“머리가 좀 아파서 방에서 쉴까 해서요.”
“내내 잘 있다가 갑자기 머리가 왜 아파? 너 혹씨 우리 예서가 좋은 회사에 취업해서 스트레스받는 거니? 그러게 우리가 뭐라고 했어.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라고 했잖니. 요즘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힘들다고 하던데 넌 지방대 나와서 어디 취업이나 되겠니?”

큰엄마가 어찌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던지 거실에 있던 가족들 모두가 저만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그 모습에 할머니가 큰엄마를 나무랐습니다.
“대학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난리야? 그까짓 대학 안 나와도 잘 되는 사람은 다 잘 되기 마련이야. 우리 다현이가 대학을 못 간 것도 아니고 지방 국립대를 갔는데 그 정도면 잘한 거지 뭐.”
“어머님이 잘 모르시나 본대요. 국립 대든 뭐든 서울에 있는 대학 나온 거랑 그렇지 않은 거랑은 천지차이거든요. 요즘 지방대 나오면 취업도 안되는데, 그냥 안 가고 말지 괜히 돈만 날렸다 그 말인 거죠. 그럴 바엔 차라리 재수를 하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방대를 간 거야?”
큰엄마가 아주 대놓고 비난하고 있었는데요. 그 모습에 순간 엄마가 버럭 했습니다.
“형님! 지방대라니요? 그래도 나름 알아주는 국립대인데.”
“알아주긴 뭘 알아줘? 그래봐야 지방에 있는 대학인 거지. 돈만 엄청 날린 꼴이라니까.”
큰엄마가 다시 비웃듯 말을 하고 있었고, 사촌 언니가 큰엄마를 거들었습니다.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 다녀 보니까 인맥도 진짜 중요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지방으로 대학 가니까 연락을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언젠가 한번 만났는데 말도 안 통하고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래서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하는 거예요”

“거봐 내 말이 맞잖아. 대학이 그래서 중요한 거라니까. 지방대 다니면 남자도 꼭 지방대 남자 만나더라니까.”
큰엄마가 다시 비웃듯 말하고 있었는데요. 큰엄마의 예의 없는 행동에 다른 가족들도 양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평소 큰엄마는 그게 누구든 깔아뭉개는 걸 즐기는 사람으로 조금은 야비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지방에 있는 대학에 들어간 뒤로 더욱 심하게 부모님과 저를 깔아뭉개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사촌 언니가 서울 명문대를 들어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말 겨우겨우 서울에 있는 모 대학에 들어간 거였거든요. 하지만 큰 엄마는 제가 지방대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허구한 날 시비를 걸어왔어요. 큰엄마와 사촌 언니가 계속해서 지방대 비하하는 말을 하자 엄마가 다시 말을 꺼냈어요.
“사실 우리 다현이가 예서보다 수능 성적은 더 좋았잖아요? 우리 다현이도 그냥 대학만 생각했더라면 인 서울 충분히 했을걸요. 그렇지만 원하는 과에 가려고 그런 거뿐인데, 그렇게 말을 하는 건 아닌 거 같네요.”

“동서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나 본데, 결국에는 어느 대학 나왔냐가 중요한 거야. 과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 그게 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실력이 안되니까 그냥 하는 말이잖아.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고 인정해.”
그런 큰엄마와 사촌 언니로 인해 집안 분위기는 항상 안 좋았고 가족 모두가 두 사람을 반기지 않았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스타트업에 취업을 했습니다. 스타트업이라는 용어가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지만 한마디로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을 뜻합니다. 그에 비해 사촌 언니는 중견기업에 취업을 했었기에 큰엄마가 비호같이 쫓아왔다고 합니다.
“동서! 이게 무슨 말이야? 예서 아빠 말로는 다현이가 스타트업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그게 진짜야?”
“네. 교수님이 추천해 줘서 괜찮은 곳에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뭐? 괜찮은 곳? 이제 보니 동서 진짜 무식하구나. 코딱지만 한 회사 만들어놓고 스타트업이다 뭐다 말만 그럴싸한 거지 그게 어디 회사야? 그리고 그 교수라는 사람은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하고 그러세요? 다현이는 엄청 좋아하고 있는걸요. 비록 스타트업이긴 하지만 다현이가 코딩에 재능이 있다 보니 뽑힌 거 같더라고요. 회사랑 같이 성장하는 거라 나쁠 건 없을 거 같아요. 요즘은 4차 산업혁명이 대세인 시대잖아요.”
“4차 산업은 개뿔, 그러게 내가 재수를 시켜서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보내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세상에나 스타트업이 뭐야 스타트업이… 말이 좋아 스타트업이지 내일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회사인 거잖아. 동서! 정신 똑바로 차려. 그러다 그 회사 다니는 남자를 사윗감으로 데려 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보니 다현이 앞날이 아주 깜깜하다 깜깜해. 부모라도 말려야 하는 데 똑같이 무식하니 답이 없는 거잖아.”
한참 동안을 큰엄마가 엄마를 비난하다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날 엄마가 아빠에게 처음으로 짜증을 내면서 말을 꺼냈어요.
“여보! 형님 좀 집에 못 오게 할 수 없어? 오지 말리는데도 왜 허구한 날 찾아와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

“왜? 오늘 형수님이 또 왔어?”
“말도 마. 와서는 나보고 무식하다면서 어찌나 무시하던지 짜증 나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당신은 뭐 하러 다현이 스타트업에 취업할 걸 말한 거야?”
“그게 뭐가 어떻다고 그래? 난 기뻐서 말한 건데. 형이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다현이가 들어간 회사가 전망이 아주 좋다고 하더라고. 형은 나한테 잘 된 거라고 몇 번이나 칭찬을 했는데 형수가 꽉 막혀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당신이 아주머님한테 말을 하든지 해서 형님 우리 집에 못 오게 해. 만약 오더라도 문 안 열어 줄 테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엄마가 어찌나 화가 난 목소리로 말을 하던지 아빠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어요. 그 뒤에도 큰엄마가 몇 번인가 더 찾아왔지만 엄마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사촌 언니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과 결혼을 했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론 대학도 언니와 같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네요.
시간이 조금 더 흐른 어느 날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저기… 미리 말을 했어야 했는데 다현이 남자 친구가 인사드리고 싶다고 해서 오라고 했어요.”
“뭐야? 다현이 남자친구 생긴 거야? 설마 같은 회사 직원인 거야? 뭐 하는 남잔데?”

“형님! 숨넘어가겠어요. 하나씩 물어보세요. 그리고 조금 있으면 온다고 했으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동서! 직업이 뭐야? 궁금해서 그래.”
“우리 다현이랑 같은 회사 다니고 있어요.”
“뭐? 다현이 회사라고 하면 그 스타트업인가 하는 회사 말이야?”
그러던 중 남자친구가 도착을 했고, 다 같이 않아서 차를 마셨는데, 남자친구가 자리에 앉자마자 큰엄마가 따지듯 물었어요.
“저기 내가 듣자 하니 경상도에 있는 대학 나왔다고 하던데 대체 경상도 어느 대학을 나온 거예요?”
“아… 네.. 저는 포스텍 나왔습니다.”
“뭐? 포스텍? 우리나라에 그런 대학도 있었나? 이름이 포스텍이 뭐야 포스텍이…”
“아! 대외적으로는 포스텍이라고 하는데 정식 명칭은 포항공대입니다.”
“공대? 그럼 공업대학교를 나왔다 그 말인 거예요? 우리 때는 공고도 가고 농고도 가고 했는데 공고 나온 사람들이 가는 곳이 공대인가? 아니 서울에 학교가 그렇게나 많은 데 어쩌다 포항까지 갔대? 뭐 물어보나 마나 공부를 못해서 그러긴 했겠지만 말이야.”
큰엄마가 한껏 비웃으며 말을 하고 있었는데요. 포항공대라는 말에 사촌 언니 부부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었습니다. 그 순간 할머니가 큰엄마를 나무라기 시작했어요.
“야~! 무식해도 어떻게 이렇게 무식할 수가 있냐? 올림픽에 누가 누가 제일 무식한지 시합하는 정식종목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니까. 나도 알고 있는 포항공대를 뭐라고? 공고 나온 사람들이 가는 곳이 공대라고? 지나가는 옆집 개가 웃겠다.”
“어머니! 무식하다니요. 사위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할머니에 꾸짖음에도 여전히 분위기 파악을 못한 큰엄마가 다시 비웃으며 말했어요.
“그래봤자 스타트업인가 거기서 일한다며?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그런 일을 왜 하겠어? 똑똑한 사람이면 대기업 같은데 들어갔겠지?”
“형님! 사실 우리 예비사위가 거기 회사 사장입니다.”
“뭐? 사장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예요. 그 회사 사장이다 그 말이에요. 워낙 유망한 회사라 여기저기서 투자를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연 매출이 50억이 넘는다고 하던데… 대기업에서 엄청나게 지원받고 있다고 하네요. 역시 포항공대를 나와서 그런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요. 형님 말대로 인맥부터가 다른가 보더라고요.”

엄마가 남자친구를 자랑스레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는데요. 사촌 형부가 남자친구에게 감탄하듯 말했습니다.
“대박! 정말 부럽습니다. 나이도 많지 않은데 진짜 대단하시네요.”
“아닙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성과가 좋았던 거뿐입니다. 다현이도 옆에서 많이 힘이 됐고요.”
“역시 들어오시는데 포스가 엄청나 보이긴 했습니다. 저기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저도 일자리 하나 없을까요? 우리 회사는 말만 중견기업이지 엄청 부려먹을 줄 만 알았지 월급도 쥐꼬리만큼만 주고 진짜 희망이 없거든요.”
사촌 형부의 말에 큰엄마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요. 아마도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뒤로 큰엄마가 사촌 언니 부부를 데리고 쌩하니 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뒤 우리는 결혼을 했는데요. 어느 날 엄마가 제게 조용히 말을 했어요.

“니 큰엄마 요즘 배 아파서 얼굴이 말이 아니란다.”
“왜? 우리 남편이 포항공대 나온 사업가라?”
“그런 것도 있는데 우리 김서방이 서울 도곡동에 집도 있다는 소리까지 듣더니 얼굴 표정이 말이 아니더라니까. 그러니까 평소에 마음을 곱게 써야지 그게 뭐 하는 짓이야.”
그 뒤 큰엄마는 더 이상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어요. 큰엄마가 참석하지 않는 게 가족들 모두 좋아하는 분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