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 막 대학생 졸업한 사회초년생 청년입니다. 저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에 합격을 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좌절하고 가난한 우리 집안 처치만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이 공부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공부가 좋아서 무작정 공부만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술을 마시게 되었고 친구에게 속상한 마음에 신세한탄을 하게 되었어요. 친구는 어릴 적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고 우리 집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친구라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제가 대학을 입학하고도 입학금이 없어 대학을 못 가게 생겼다고 부모님을 원망했고 저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때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들어주고 있었어요.
친구와 헤어진 뒤 집에 들어가면서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일부로 술도 깰 겸 집을 걸어서 갔고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대학을 들어갈 결심을 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누군가 등록금을 납부한 것입니다. 어리둥절한 저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어제 마신 술도 덜 깨고 ‘꿈일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어제 함께 술을 마신 친구가 집에 들어가 아버지에게 부탁을 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흔쾌히 등록금을 내주셨고 저는 친구와 아버지에게 너무 큰 은혜를 입어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지금 상태로 제가 할 수 있는 건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서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는 거였고 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되는 일이었어요.
저는 대학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했고 부모님께서 조금씩 도와주셨지만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등록금이 없어 휴학 위기를 겪을 때마다 친구 아버님께서 등록금을 내주셨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고 저는 대기업에 취직을 하게 되었어요. 월급을 받아 최소한의 생활비로만 생활을 하며 돈을 모아 친구 아버지 돈을 값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나러 갔지만 끝내 돈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친구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 호의는 돈으로 갚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갚는 거다.”라고 말씀하시며 나중에 “나 죽거든 우리 아들놈 위로 잘해주고 조의금이나 많이 내거라.”라고 웃으셨습니다.
우리 아들이 외아들이라 외로울 거라며 너도 내 아들이라 생각하니 형제처럼 사이좋게 잘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정말 그분에 둘째 아들이 되어 드렸고 항상 경조사에 함께 했어요. 친구랑도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같이 나이를 먹어갔고 결혼을 했고 자식도 낳으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부둥켜안고 울었고 대기업에서 부장 자리까지 진급한 저는 주변에 지인들이 많았고 친구 역시 주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장례식장은 문상 온 사람들이 넘쳐났고 우리는 똑같이 형제처럼 문상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에게 조의금 대신 화환 50개를 장례식장에 놓아 드렸습니다. 아버지 깊은 은혜에 감사합니다. 아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항상 아버지 걱정 안 하시게 옆에서 잘 챙기겠습니다.
그곳에서 편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