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년 전 결혼해서 남편이 사는 곳에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남편과 만나기 전에는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지역이었기에 제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친구도 없고 가족들도 없고 커피 한잔 하면서 수다 떨고 고민 상담할 만한 사람도 없었어요.
결혼 전에는 제가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을 했습니다. 나름 적성에도 잘 맞았고, 200만 원 남짓한 월급이었지만 부모님 댁에서 살고 있다 보니 부족하진 않았어요.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고 1년 반정도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갑작 사는 지역이 다르다 보니 결혼을 하게 되면서 한 사람은 다니던 직장을 포기해야 했고, 당연히 남편이 월급도 더 많고 경력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제가 일을 그만두고 남편이 사는 지역으로 건너와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었고 남편도 오랜만에 푹 쉬라 하더라고요. 제가 22살 때부터 6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했기 때문에 사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은 지쳐있을 때였어요.
저도 빨리 직장을 구하기보다는 남편과 신혼생활을 좀 더 즐기고, 아이도 낳고 어느 정도 키운 뒤에 일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간호조무사라는 직업이 직장을 구하기도 쉽고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에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시 취업이 가능했거든요.
하지만 결혼생활이 1년이 넘어가면서 남편이 갑자기 변해가기 시작했어요. 회사에서 같이 입사한 동기가 알뜰살뜰 돈 모아서 아파트로 이사 갔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그때부터 사람이 정말 달라지더라고요. 저희가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저금도 하고 가끔 외식도 하고 놀러 다니며 살았는데 남편이 갑자기 돈을 모아야 한다면서 말끝마다 돈돈 거리면서 집 타령을 하는 겁니다.

제가 돈 쓰는 것 하나하나 간섭하고 관리하기 시작했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오늘 어디에 돈 썼는지부터 묻더라고요. 반찬 하려고 집 앞 마트에서 두부, 콩나물들 만 원도 안 되게 돈을 쓰더라도 남편은 항상 영수증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이거 꼭 샀어야 했어?”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제가 외식을 한 것도 아니고 집에서 배달음식 시켜 먹는 것도 아닌데 반찬값까지 하나하나 간섭하기 시작하면 저보고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자기는 낮에 회사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집에 먹을게 떨어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인가 봐요. 남편은 집에서 아침도 안 먹고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먹고 저녁도 입맛 없다면서 자주 안 먹기 때문에 집에서 밥 먹을 일이 별로 없긴 합니다.
남편은 무조건 아끼라고만 하고 제가 필요 없는 곳에 자꾸만 돈을 쓴다고 타박했어요. 그때는 저도 실업급여가 끊긴 상황에서 남편이 주는 생활비 200만 원으로만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하도 돈 쓸 때마다 저 난리를 치니까 두 달 만에 생활비를 거의 안 쓰게 됐어요.
어차피 저 혼자 대충 끼니를 때우면 그만이니까 식재료 사는데 돈도 거의 쓰지 않았죠. 150만 원 정도 쓰던 생활비를 남편 보란 듯이 90만 원 정도로 줄여버렸더니 남편의 반응은 “거봐 당신도 아끼면 할 수 있잖아!!”라고 하면서 그때부터 생활비를 100만 원만 주더라고요.

사실 결혼 전에 제가 모아둔 돈도 있었고 실업급여받은 것도 그대로 제 통장에 있었기 때문에 돈이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그 태도가 너무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요. 남편이 주는 생활비는 반으로 줄었지만 잔소리는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이걸 꼭 사야 했냐, 이거보다 더 싼 물건이 있을 텐데 왜 찾아보지도 않고 사냐면서 돈을 더 아낄 수 있다며 저를 압박했어요.
그렇게 제가 생활비를 악착같이 줄이면 줄어든 만큼 제게 주는 돈도 줄어들었습니다. 나중에는 만 원 단위로 줄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살림하는 여자라지만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겠습니까? 남편이 하도 뭐라고 하니까 짜장면 한번 먹으려다가도 참고 마는 거죠.
이런 생활이 하도 답답해서 아이 계획이고 뭐고 나도 취업해서 돈부터 벌어야겠다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나도 일자리 구해서 돈 벌어 올 테니까 대신 앞으로 집안일도 반반 나눠서 하자고 이야기했더니 남편은 자긴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는 사람인데 무슨 집안일할게 있냐더라고요. 이 사람은 청소고 빨래고 전부 알아서 되는 줄 아는 사람이에요.
오히려 제가 돈 벌겠다고 하니까 80만 원 정도 주던 생활비를 반만 주겠다 하는 겁니다. 같이 돈 버는 처지에 생활비도 반반씩 내면 된다면서요. 진짜 어이가 없어서 겨우 80만 원 남짓 생활비 주면서 거기서 어떻게 반을 깎을 생각을 할 수가 있냐고, 그럴 거면 뭐 하러 나랑 결혼해서 살고 있냐고 따졌더니 오히려 저보고 돈 쓸 곳도 없는 사람이 손이 크고 낭비가 심하니까 돈이 모라잔 거라네요.
자기 직장 상사는 집에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있는데도 생활비로 딱 100만 원만 주고 나머지는 전부 적금을 붓는다 하는 겁니다. 100만 원으로 세 식구 먹고살고 고등학생 아들 뒷바라지까지 다하면서도 그 집 여자는 생활비 아껴서 일 년에 300만 원짜리 적금도 넣고 있다네요.

이대로 살다 간 내가 피 말라 줄을 것 같아서 일단 돈이라도 벌어야겠단 생각에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비록 이전 직장보단 월금이 적긴 했지만 작은 병원에 일자리를 바로 구할 수 있었어요.
남편에게 나도 다음 주부터 일하고 나간다고 이야기했더니 저보고 월금이 얼마냐고 묻고는 “그 돈 벌 바에야 집에서 살림이나 해. 그거 벌어서 뭐 어쩌겠다고 그래. 당신 아이 가진다고 안 했어? 일 시작했다가 애 가지면 바로 그만둬야 하는데 그냥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 낳을 준비 하자.” 하네요.
아니 돈 부족하다고 난리 난리를 치면서 너도 나가서 돈 벌어오라는 식으로 말하더니, 정작 제가 일자리 구했더니 이제는 집에서 살림하고 애나 낳으랍니다.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지금 우리가 아이 생기면 생활비 더 줄 거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남편은 무슨 황당한 질문을 하냐는 얼굴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때 이야기 못 들었냐? 우리 회사 부장님은 백만 원으로 고등학생 아들까지 다 키운다니까. 돈을 더 쓸 생각부터 하지 말고 당신 쓰는 돈을 아낄 생각부터 좀 해봐!”
남편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이랑 더 살다가는 평생 커피 한잔 마음 놓고 못 마시면서 집안일하고 애 보면서 구질구질하게 살겠구나 싶더라고요. 아무리 집을 사는 것도 좋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만이 행복은 아니라지만 이제 결혼 2년 차 신혼이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두부 한 모를 들고 살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1500원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돌아서는데…‘내가 왜 이렇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어요.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을 붙들고 난 이렇게 못 살겠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 돈 때문에 벌벌 떨면서 살 거라면 그냥 이혼하는 것이 맞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솔직히 남편이 생각을 고쳐먹지는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제게 미안하다 사과는 살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혼하자는 제 말에도 남편은 끝까지 돈 이야기뿐이었고 자기가 지금까지 저를 먹여 살렸다면서 2년 동안 벌어다 준 생활비를 그대고 다 내놓으라 하더라고요.
자기 혼자 살았으면 쓰지 않아도 될 돈인데 제가 집에서 흥청망청 돈을 다 써서 없애버렸다고 이혼할 생각이라면 자기는 소송을 해서라도 제게 줬던 생활비 다 돌려받겠다고 하는 겁니다.
진짜 살다 살다 이런 지질한 놈은 처음 봤어요. 저도 그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너 마음대로 해봐. 고소를 하던 경찰을 부르던 받아 갈 수 있으면 알아서 해봐”라고 했죠.
그렇게 저희는 이혼 절차를 밟게 되었고 남편은 제게 100만 원씩 줬던 생활비를 진짜 돌려받으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오히려 이혼하면서 제가 해갔던 혼수 살림을 다 들고 나와버렸고 그렇게 돈돈 거리던 남편은 텅 비어버린 빈집에서 살게 생겼네요.
저는 남편과 별거하자 만자 다시 원해 다니던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예전처럼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더 이상 커피 한잔 마시려고 고민 또 고민하지 않고 맛있는 게 먹고 싶으면 부모님 모시고 언데든지 먹으러 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왜 그런 남자 만나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지방 촌구석에서 영수증 검사받으며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2년 결혼생활하고 이혼녀가 되었지만 제 나이 아직도 29살이고 인생 끝났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다시 직장 열심히 다니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 제게도 좋은 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