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털터리가 됐지만 행복합니다.“ 평생 모은 돈 기부한 노부부의 사연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빈털터리가 됐지만 행복합니다. 노점상으로 과일장사를 해서 빌딩주까지 된 노부부는 전 재산을 모두 어렵게 사는 이웃을 위해 쓰고 싶다고 기부에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노부부는 공부가 하고 싶어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많은 돈을 기부하였고 학생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을 포지하지 않도록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여 학업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빈 털터리가 됐지만 행복합니다.“ 평생 모은 돈 기부한 노부부의 사연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김 씨는 강원도  평강군 남면에서 태어나서  15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7살  한참 공부해야 할 나이에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고향 집에  어린 동생 둘만  북에 남겨두고 남쪽으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6,25 전쟁이 일어났고 남북이 갈라지면서 고향에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고 동생들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동생들과 생 이별을 하고 괴로워하는 김 씨는 남쪽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했고결혼도 하게 됩니다. 이들 부부는 가난했고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일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하지만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과일장사를 했고 부부는 잠도 못 자가며 열심히 살았고 작은 가게를 열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품질 좋고 신선한 과일을  저렴하게 팔았고  과일을 구입한 사람들로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단골도 많이 생기고 점점 가게를 확정해 나갔습니다.

“빈 털터리가 됐지만 행복합니다.“ 평생 모은 돈 기부한 노부부의 사연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평소 절약하고 살았던 김 씨는 교통비를 아끼려고 매일 새벽 1시간씩 걸어 도매시장에서 과일을 사 왔습니다. 

그리고 매번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  근처 식당에서  잡일을 도와주며 겨우 하루 한 끼를 먹었습니다.

부부는 어려운 어린 시절  학교에는 갈 수 없었고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못 배운 탓에 할 수 있는 일은 몸으로 부딪쳐 가며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부부는  과일장사와 절약으로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었다고 하는데요   

자신들이 못 배운 서러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었기 때문에  아들에게는 하고 싶은 공부는 최대한 지원해 줍니다.

아들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서  공부를 했고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과일 장사로 성공한 부부는  소유 건물에는 카페와 식당 등  점포 20여 개가  입주해 있었습니다. 부부의 건물은  임대료가 크게 오르지 않아 20년 이상 장사하시는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빈 털터리가 됐지만 행복합니다.“ 평생 모은 돈 기부한 노부부의 사연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1977년부터 노부부의 건물에서 족발가게를 운영하신 이춘희 (76) 씨는 40년을 넘게  노부부를 알고 지냈지만 단 한 번도 멋지게 차려입거나 화장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항상 검소하고 평범하게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상인 들은 청량리에서 임대료가 비싸 갈 곳이 없을 정도로  한자리에서 이렇게 오래 장사한 건물은 여기뿐일 것이라고 말하며  존경스러운 건물주라고 했습니다.

또한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하였습니다.  부부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학교에 기부하기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물론  자식들하고도 충분히 의논을 하였고  두 아들 역시  부모님의 결정에  동의를 했다고 합니다.

25일  고려대학교 본관에서 열린 기부 행사장에서  노부부는  과일을 팔아 어렵게 모은  돈을 쓰고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업도록 장학금에 쓰인다면  너무 기쁘고 행복할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김 씨의 아내  양영애 씨는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이  영광스럽게 학교에 기부하게 되어 후련하고 뿌듯하다며  돈이 없어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학생들에게 힘이 되도록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는데 소중히 쓰이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빈 털터리가 됐지만 행복합니다.“ 평생 모은 돈 기부한 노부부의 사연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 정신도 흐릿해져 가고 나도 뇌경색 진단을 받아 더 망설여선 알 될 것 같아서 결정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정신이 있을 때  기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남편과  자식들이랑  협의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전했습니다.

노부부는 아직까지도 절약하는 정신으로  자신들을 위해서는  돈 한 푼도 마음껏 쓰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빈 털터리가 됐지만 행복합니다.“ 평생 모은 돈 기부한 노부부의 사연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이들 부부에 집에는 아직도  40년 전 가구들이 그대로 있었고  색이 바랜 장롱은 40년 전에  양 씨의 언니가 선물한 것이라고  생애 첫 옷장이었다고 말합니다.

고려대 총장은  노부부에게 ” 평생 동안  땀 흘리시고 고생해서 모은 소중한 재산을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 인재 양성을 위해 기분 한 두 분의 고귀한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고려대 측은 이번 기부금은 노부부의 뜻에 따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기숙사비 지원에 쓸 예정이며 기부자들에게는 기부금을  어디에 쓰인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보고서를 개별적으로 제작해 전달하겠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노부부의 용기 있는 결정에  진심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행동이고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기부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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