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항상 위염과 식도염을 달고 살았습니다. 체격도 좋고 키도 큰 우리 딸이 언제부터인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이 말라갔고 기운이 없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검진을 했더니 이미 암세포가 위는 물론 소장 간까지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몸이 망가질 때까지 왜 참고 견뎠는지 딸이 바보처럼 느껴집니다.

항상 곁에서 웃어줄것 만 같았던 딸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사위가 문제입니다. 이직 젊은 나이인데 가슴 아프지만 그만 잊고 새 삶을 살았으면 좋으련만 사위는 딸이 떠난 지 3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 집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항상 현관문을 열고 웃는 얼굴로 들어섭니다.
” 어머님 ! 사위 왔어요.”
” 어머니 배고파고 밥 좀 주세요.”
” 일주일 동안 어머니 된장찌개 먹고 싶어서 혼났습니다.”
사위는 주말마다 남편이랑 반주로 술 한 병씩을 마시고 사위에 넉살에 남편은 웃겨 죽겠다는 얼굴로 항상 같이 대작을 합니다.

우리 딸만 이 자리에 없지 보통 집안의 가족들의 모습 그대로였어요. 사위는 술 해 취해 딸이 쓰던 방에서 잠이 듭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하고 가슴이 아픈지 이제 새 장가를 갔으면 좋으련만… 안쓰러운 운 마음에 고마우면서도 저는 속이 타들어갑니다.
” 이제 죽은 사람 잊고 다른 여자 만나볼 생각은 없는 거야?
” 언제 까지 그럴 거야?”
” 이제 집에 오지 말게나 내가 이제 자네 보는 게 힘들어!”
” 아직 젊은데 좋은 여자 만나서 새 출발 해야지..”
” 우리 딸도 자네 그러고 있는 거 꼴 보기 싫어할 것같네”라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 엄마! 큰 아들 필요 없어요?”
” 왜 그렇세요?”
” 저 매일 오고 싶은 거 꾹 참고 주말에 겨우 한번 오는데 서운하게 그렇지 마세요 장모님!”
우리 집은 큰 딸, 그리고 세상을 더난 작은 딸이 둘뿐인데 사위는 우리 집에서 아들이나 마찬가지죠. 그렇게 매몰차게 한 소리 해서 보내고 마음이 쓰이던 어느 날 사위가 연락이 왔습니다.
” 장모님 이번에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어요.”
” 시간 되시면 오늘 오실래요?”
” 현관 비밀번호 문자로 보내놓을 테니 먼저 들어가 계세요!”
” 저 퇴근하고 바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그날 오랜만에 딸네 집에 갔습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갔는데 딸이 있을 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화장실에는 딸 칫솔이 있었고 옷방에는 딸이 입던 옷가지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마치 딸이 살아 있기라도 한 듯 그대로였어요. 저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아직도 세상 떠난 딸을 못 잊고 이렇고 사는 사위가 가엽고 미안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사위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저는 사위를 붙들고 오열하며 주먹을 쥐고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 죽은 사람은 잊고 너도 살아야지 응? 이제 좀 그만해 “
” 집 꼴이 이게 뭔가 소영이가 죽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물건들도 안 치우고..”
” 귀신이라도 붙들고 사는 건가?”
” 제발 이제 잊고 새 출발 하게..”
” 이제 집에 오지 말게 와도 문 안 열어 줄 거야!”
” 비밀번호 바꿀 걸세.”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뭐라고 하면 왜 그렇게 실실 웃는지 정말 속이 너무 상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 한 번만 집에 더 오면 집 팔고 이사 가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게!”
사위는 제가 하는 말에 주저앉아 오열하며 말했습니다.
” 어머님.. 안 돼요 저 내치면 저 죽어요!”
” 아무리 그 사람이 있던 그때처럼 집을 해놓고 살아도 지영이의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 일주일 한 번이라도 어머님 집에 가야 집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 집사람이 해주던 된장찌개 맛, 집사람 냄새, 따뜻한 아버님의 웃음소리.”
” 이런 것들이 그나마 저를 버틸 수 있게 해 줍니다.”

저는 사위가 너무 나 불쌍하고 가슴이 아파 사위를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사위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몰라 그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아직도 사위는 변함없이 주말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어머니 배고파요 밥 주세요” 라고 하면서 말이죠! 이제 우리도 사위가 온다고 생각 안 하고 큰아들이 퇴근하고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좋은 짝도 만날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큰아들이 장가가서 손주를 보여주는게 우리 노부부의 소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