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추운 12월 겨울날 찬바람이 유난히 제 가슴을 스쳐 지나갑니다. 추운 겨울날 오늘도 저와 동생을 위해 아버지는 일을 나가십니다. 새벽 늦게 서야 돼 돌아오셔서 맨 처음 하시는 일은 밥통부터 여십니다.
오늘은 이 자식들이 밥 많이 먹었나?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리곤 온 제 방과 동생 방으로 들어오셔서 널려 있는 옷을 정리하십니다. 하나씩 옷걸이에 걸어서 옷장 안에 집어넣으십니다. 오늘 춥던데 왜 이렇게 얇은 옷들만 입고 다니는지 하시면서 말입니다.
아침이면 저희 집은 저희 등교 때문에 북적거립니다. 매일같이 차가운 김밥에 우유를 주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김밥이 너무도 차가웠기 때문에 반도 먹지 않은 채 남기고 갑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저희 등교 시간에 맞춰 한 시간 전에 김밥집으로 가십니다. 오늘은 무슨 김밥을 사다 줄까 하고 말입니다. 양말을 신을 때면 항상 1000원짜리 지폐가 양말 밑에 담겨져 있습니다.

저는 1000원이 그렇게 큰돈인 줄 놀랐었습니다. 하루 이틀 일주일 1년을 모으니 36만 5000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가 집을 나서면 만족하셨는 듯이 잠을 청하십니다. 채 두 시간도 주무시지 못한 채 다시 일어나셔서 일을 나가십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싫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무기력한 아버지 무뚝뚝한 아버지 그런 제 마음을 아셨는지 아버지께서 어린 제 동생에게 의지하셨습니다.
저도 직접 아버지에게 묻지 않고 동생에게만 아버지 안 무을 물었습니다. 만날 시간이 없으니까. 동생에게 항상 물어봤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날수록 저와 아버지의 거리는 멀어져만 갔습니다.
너무나 차가운 12월 겨울 그날도 아버지는 저희에게 줄 따뜻한 김밥을 사시러 가셨습니다. 오늘은 참치김밥 사다 줘야지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이렇게 말하고 말입니다. 그날따라 저는 일찍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시기 전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몇십 분이 지나도 김밥 사러 나가신 아버진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내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화도 없던 저와 아버지 사이였기 때문에 더욱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끝내 길을 나섰습니다. 다 학교를 지쳐둔 뒤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가까운 김밥집은 다 찾아왔지만 어디에서도 아버지의 행방을 찾을 수 없고 편의점에 들어가 혹시라도 김밥을 사 가지 않았을까? 하고 찾아 헤맸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아버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 가슴엔 메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치솟았습니다. 생전 연락 안 하던 이혼하신 어머니 전화번호를 머릿속 깊은 곳에서 꺼내어 번호 하나씩 눌러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오랜만이라며 반기셨지만 전 다짜고짜 아버지가 사라지셨다고 그럴 뿐이 아닌데 전화도 안 받을 분이 아닌데 하면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어머니도 걱정이 되신 듯 당장 이리로 오라고 말씀하시고 저와 통화를 마치셨습니다.

저는 추운 날씨와 힘든 발걸음에 지쳐 조금 쉬었다가 찾기로 한 뒤 한 라면집에 들어갔습니다. 라면집에서도 김밥은 팔고 있습니다. 저는 아침마다 김밥을 먹어서 그런지 김밥을 주문시켰습니다.
한숨을 내쉬며 김밥 한 젓가락을 들어 올려 삼켰습니다. 낯이 익은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했습니다. 저는 라면집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숱이 없는 머리에 쏙 들어간 볼에 강대뼈가 튀어나온 사람을 받느냐며 라면집 주인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우리 집에서 아침마다 김밥 두 줄를 사가시는 아저씨 한 분이 계신다며 저는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곧장 그 라면집 주위를 찾아 헤냈습니다. 앞에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눈을 밟으며 전속력을 다해 뛰어갔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멀었습니다. 거리는 저에게 너무나도 멀었습니다. 주위에 도착할 무렵 하얀 눈 위에 덮여진 새발 피를 보았습니다. 황급히 사람을 뒤집어보았습니다.
차가운 얼굴에 제 아버지셨습니다. 그리고 한 손에 쥐어있는 터져버린 김밥 두 줄이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심장이 먹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추운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김밥에선 아직까지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전 저도 모르게 터져버린 김밥 하나를 주워삼켰습니다. 따뜻했습니다.

몇 년간 먹어온 똑같은 김밥인데 지금까지 먹어온 김밥들 중에서 제일 따뜻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눈물인지 콧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김밥을 꾸역꾸역 집어 삼 겼습니다.. 그리곤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아버지 아빠 일어나 아빠.” 아무 대답 없으신 아버지..”오늘 김밥은 정말 맛이 좋네요.”
아버지는 또 아무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김밥이 너무 맛있어서 한 줄 더 먹어도 되죠. “제 가슴은 끝내 무너져버렸습니다. 곧 주위 사람들이 몰려와 아버지는 병원으로 실려가셨지만 끝내 추운 12월 겨울날 돌아가셨습니다.
며칠 뒤 병원에서 아버지가 입고 계시던 옷을 받았습니다. 무심코 바지 주머니를 뒤지다가 1000원짜리 두 장을 발견했습니다. 아직도 아버지의 체온이 남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리곤 병원 문을 벅차고 한참을 걷다가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졌습니다. 후회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세 시간마다 저희가 걱정돼서 항상 전화하시던 아버지가 날씨가 춥다며 목도리와 장갑을 사주시던 아버지가 자식들 지각 안 시키려고 잠도 못 이루시던 아버지가 차가운 김밥 대신 따뜻한 김밥 사려고 나가시던 아버지가 양말 밑에 1000원짜리 지폐 하나를 넣어주시던 아버지가 밉지만 저를 사랑하셨던 제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아버지의 체온이 아버지의 음성이 그리고 죄송합니다. 이렇게 못나버린 아들이 되어 어린 아들이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때 아버지 손에 쥐어진 따뜻한 김밥 두 줄이 다시는 먹지 못하겠죠. 다시는 맛을 느낄 수 없겠죠. 다시는 만날 수도 없겠죠.
다시는 전화 통화도 못하겠죠. 아버지 못난 아들이 이제 와 용서를 구합니다. 부디 그곳에서도 편안히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