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0대 후반 남성입니다. 저는 우리 장모님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사연을 보냅니다.
제 여동생은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심한 열병을 앓은 뒤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동생은 세상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을 하는 것도 많이 어색한 편이죠. 그런 여동생을 보며 외국인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었고 말이죠. 하지만 여동생은 소리만 듣지 못할 뿐 발음이 약간 정확하진 않지만 말은 곧잘 하는 편입니다.

그런 여동생으로 인해 저는 늘 안타깝기만 했었는데요. 제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을 만나면서 제 생각이 얼마나 치졸했는지 알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그런 제 여동생이 조금 창피하기도 했어요. 전 여자친구를 사귀고 얼마 후에 그런 제 여동생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의 전 여자친구들은 굉장히 놀라며 뭔가 찜찜해하는 듯한 행동을 했어요.
그러다 전 여자친구들 집에 인사를 하러 가서 그러한 이야기를 하면 전 여자친구 가족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바뀌었는데요. 그렇게 얼마 뒤에 전 여자친구들은 부모님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저에게 헤어지자고 통보하곤 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기적과도 같이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어요. 직장 상사가 소개를 해줬는데요. 처음에는 제가 정중히 거절을 했어요. 저는 그때쯤 세상을 향한 제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렸거든요. 마치 제 여동생이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그냥 세상에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가 않았어요. 하지만 제 아내를 소개해 준 사람 말로는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야.

내가 진짜 아까워서 소개해 주는 거야. 밥이나 같이 먹는다고 생각하고 만나 봐 박 대리 진짜 괜찮은 사람인데 아까워서 그래라고 말을 했어요. 그렇게 만나게 된 아내는 성격이 굉장히 밝았고 순수한 사람이었어요.
저는 그런 아내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었어요. 웃는 모습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사람이었으니까요? 아내는 항상 잘 웃었고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여자친구를 데리고 저희 집으로 인사를 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예비 장모님에게 여동생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저기 제 여동생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어? 들었네? 자네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얘기? 우리 큰 딸이 사진 보여줬는데 엄청 예쁘다며?”
” 나중에 우리에게도 소개해 주게나 아주 궁금하구먼.” 여자 친구 아버지가 웃으며 말을 했고..
”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던데? 그럼 내가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여자친구 동생이 물었어요.
그 말에 여자친구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아니지! 사돈이라고 불러야지.”
” 사돈? 꼭 그렇게 불러야 해? 그건 나중에 우리가 만나서 둘이 합의하면 되는 거지?”라며 여자친구 동생이 활짝 웃었어요.
그렇게 여자친구 부모님은 제게 마음에 드신다고 했고 얼마 뒤에 시간을 내서 여자친구가 우리 집에 인사를 왔어요. 우리 집은 지방에 작은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여자친구는 내려가는 내내… 말했어요
” 음 공기 좋다.” 그저 신나 보였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여자친구가 마음에 든다며 너무 좋아하셨어요.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을 맛있게 먹고 올라갈 준비를 하는데 우리 엄마가 여자친구에게 이것저것 많이 싸주셨어요.
“엄마! 그런 거 누가 먹는다고 그래?” 제가 핀잔을 줬지만..
” 어머! 이거 검은콩이네요? 이게 몸에 얼마나 좋은데요? 우리 엄마 밥할 때 꼭 검은콩 넣어서 하세요 엄마가 정말 좋아하겠어요.”
” 어머님 너무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 어머님 오늘 잘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도 정말 잘할게요.” 라며 저희 엄마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우리는 얼마 후에 상견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 우리 부모님이 자기 부모님 사시는 동네에서 하자고 하시던데? 바람도 쐴 겸 가보고 싶으시대”
” 우리 고향 집? 거기 좀 멀지 않나? 그냥 서울에서 해”
” 아니야 그냥 자기 고향에서 하자 여행도 할 겸 해서 말이야.” 이미 여자친구는 이미 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집에 인사를 하러 오던 난 우리 엄마가 여자친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 이해해요. 우리 딸이 낯을 많이 가려서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싫어하고 그러네요. 그런데 친해지면 잘 지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을 했거든요. 아마도 제 여동생을 위한 여자친구 가족의 배려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본가 근처에서 상견례를 했어요. 그런데 상견례에서 우리 엄마가 그만 대성통곡을 하게 되었는데요.
우리 가족 모두는 여자 친구 가족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고 말았어요. 상견례 장소에 들어가니 여자 친구 가족들이 이미 와 있었어요.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 친구 가족들은 우리 부모님과 제 여동생이 들어오자마자 급히 일어나서 반갑게 인사를 했어요.
제 여동생의 낯을 많이 가리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 여동생을 보던 장모님이 여동생에게.
“만나서 반가워요 얼굴이 참 예쁘네요.”라고 말을 했는데요. 장모님은 말이 아닌 손동작으로 말을 하고 있었어요. 그 순간 룸의 정적이 흘렀는데요. 그런 장모님을 따라 장인어른과 처제까지도 손동작으로 제 여동생에게 인사를 했어요. 미리 연습을 많이 한 것 같더라고요. 모습을 보던 제 여동생의 표정은 놀라움과 함께 큰 충격을 받은 듯했는데요. 여동생도 그런 가족들의 마음을 느꼈던 것인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며 떠듬떠듬 인사를 했어요.

그리고 곧 우리 엄마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흐느꼈어요. 모습 집에 우리 아버지도 눈물을 흘렸고 말이죠. 그렇게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장모님은 제 여동생에게..
“음식은 입맛에 맞아요?”라고 조금 어설픈 손동작으로 물었어요. 그런 장모님의 말에..
“네 맛있어요.”라고 제 여동생이 어제까지만 천천히 말을 했어요. 장인 장모님은 식사를 하는 내내 제 여동생이 소외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신경을 써주었어요.
그러다가 식사가 다 끝날 무렵 장모님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열심히 배우긴 했는데 아직 손동작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어요. 나중에 많이 가르쳐 줄래요. 동생한테 말 좀 해주게 나이가 있다. 보니 자꾸 까먹어 내가 그것까지 연습했는데~”라고 말을 했고 제가 제 여동생에게 말을 전달했어요.
그런 저의 말에 우리 엄마가… 눈물을 가득 머금고 말을 했어요.
“아닙니다. 오늘 정말 잘하시던데요.”
그 모습을 장모님이..

“정말요 진짜 고맙습니다.”라고 했고 말이죠. 그리고 옆에 있던 처제가 틈을 보더니..
“앞으로 언니라고 불러도 돼?”라고 손동작으로 제 여동생에게 물었어요. 말에 제 여동생이 ‘네’라고 또박또박 말을 하며 정말 좋아했어요. 상견례가 끝나고 아내의 말에 따르면 자기야 우리 부모님 몇 날 며칠을 연습했어. 그런데 아빠가 자꾸 틀려서 엄마한테 엄청 혼나기도 했어 라며 활짝 웃기도 했어요.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했어요 결혼 후 제가 우리 아내에게 더욱 감동을 했던 것이 있었는데요. 어느 날 우리 부모님과 제가 있는 자리에서 말하더군요.
” 어머님! 아버님! 아가씨요? 우리랑 같이 올라갈까 하는데 괜찮을까요?”라고 물었어요.
” 너희 집으로? 근데 우리 딸은 아직 우리랑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
” 어머니 아가씨랑도 이미 얘기 다 끝났어요. 아가씨도 가고 싶데요.”

” 뭐? 너희들을 따라간다고 했다고?” 저희 어머님은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옆에 있던 여동생이 말했어요.
” 엄마! 나 언니 오빠 따라가서 빵 만드는 거랑 커피 만드는 거 배워보고 싶어.” 손동작으로 말을 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여동생은 서울로 올라와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여동생은 성격 또한 굉장히 많이 바뀌었는데요. 학원을 다니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는데 어느 날은 와이프에게 부탁이 있다며 말했습니다.
” 언니! 내일 친구랑 집에 놀러 와도 돼요? 친구가 언니 오빠 궁금하대요?”라고 말했고 아내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여동생이 친구들을 초대한 날 집에는 잔치가 열리기라도 하듯 아내는 진수성찬을 준비했고 지금까지 살면서 여동생이 친구를 데려온 게 처음인 거 같아요. 아내는 이런 여동생의 모습을 사진 찍어서 우리 엄마에게 보내주기도 했어요.

사진을 보면 엄마가 다시 눈물을 흘렸고 말이죠. 확실한 건 여동생의 성격이 굉장히 많이 바뀌어 있었다는 건데요. 아무래도 우리 장모님과 아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거기다 처제랑은 나이도 비슷해서 둘이 미술관도 다니 쇼핑도 다니고 그러더니, 작년엔 둘이서 해외여행도 다녀올 정도였어요. 둘이서 완전히 단짝이 되어서 둘이 방에 틀어박혀서 그렇게 장난을 치더라고요.
참 이게 말이죠. 선한 영향력은 엄청나다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꼈어요. 사람들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던 동생이 이토록 변하다니요. 우리 부모님은 그저 기적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날도 그렇게 처갓집 거실에서 장모님은 제 동생에게 손동작으로 말을 배우고 있었어요. 이제는 제법 잘하시는데도 더 배우고 싶어 하세요.
“나이가 들어도 계속 배워야 하는 거야. 내가 요즘 아주 젊어지는 거 같아.”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날 우리는 닭볶음탕에 수박을 잘라서 정말 맛있게 먹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어요. 이런 것이 행복이겠지요. 그런 장모님의 얼굴을 보면서 문득 장모님이 저에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나네요. 장모님에게는 오빠 한 분이 계셨는데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그런데 오빠분이 몸이 많이 안 좋았다고 했는데요. 그런 오빠분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그렇게 싫었다고 했어요. 제 손을 꼭 잡으면서..
“자네 동생을 조금 다른 것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움츠리지 말게나 오빠가 더 든든하게 지켜줘야지”라고 말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장모님 님의 말에 제가 눈물을 흘렸었는데 이런 좋은 분들을 만난 것도 제 복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어떤 복이 있어서 이런 가족을 만나게 된 것일까요? 아내와 장인 장모님 그리고 처제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 다른 사람이 있다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만 배려해 주시는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