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형편은 그냥 남들 만큼 해왔던 것 같고 환경도 남들만큼 보통이었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배경에서 특별하지 않게 자랐습니다.
저는 성인이 되고 아버지 친구분이 부장님으로 계시는 가전제품 대리점에 영업사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남자가 사회생활 잘 하려면 영업을 해서 좀 배워야 한다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렇게 6개월쯤 이 지나고 막 여름이시작되었을 무렵 저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아서 평생 바다만 보면 잘한 져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계곡의 놀러 가기로 했습니다.

커다란 봉고차 한데 끌고 나오셔서 저를 포함한 남자 5명을 태우고 굽이굽이 산을 올라가셨습니다.
저희는 집에 들러서 삼촌 챙겨주시는 버너와 고기들을 챙겨 계곡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도착한 저희는 널쩍 하고 커다란 돌이 늘어진 명당에 자리를 폈습니다.
차갑고 잔잔하게 흐르는 물이며 바다랑 달리 모래가 없고 바닥이 온통 자갈이 얻고 갑자기 깊어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해서다리랑 발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가족이며 커플이며 저희처럼 단체로 온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1시간쯤 놀았을 무렵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었습니다 스무살의 패기로 주량도 모르는 술을 부어 됐을 때라 다들 뻗어서 누워있거나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 위에서부터 짧은 비명 소리가 울리더니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바위에 앉아 잠깐 쉬고 있다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올려다보니 사람들이 다 어느 것을 가리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아래로 아래로 향했습니다. 그 시선을 따라가보니 어떤 여자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물살에 떠내려 오고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저는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쪽을 떠내려 온 여자를 향해 빠르게 헤엄쳐 얻고 떠내려오는 여자를 낚아채서 건져 올렸습니다
몇 십 미터를 떠내려갔는지 여자를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숨이 가빠 씁니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어지러움을 느꼈습니다.
저 멀리서 여자의 친구들로 보이는 여자들 두 세 명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고 저는 곧바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땐 병원에 그렇게 누워있던 게 처음이라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환자실에 있던 거였습니다.
왼쪽 눈이 무언가에 가려진 듯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움직이는 것을 알아채 간호사가 급하게 나가더니 누군가를 불러왔고 처음 보는 아줌마 친구 네 삼촌이었습니다.
처음 본 아줌마는 눈물을 쏟으시면 저에게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젊어서 다행이라며 금방 태어날 수 있을 거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 모습을 정확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턱이며 ,이마 며, 거의 눈코입 빼고는 붕대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여자를 구하러 물속에 들어갔을 때 얼굴을 심하게 다쳐서 100바늘 가까이 꿰맸다고 합니다.
퇴원할 무렵 얼굴에 붕대를 풀었는데 저의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퇴원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흉터가 제 인생을 꼬일 때 로 꼬이게 할줄 몰랐습니다.
제 사항을 미리 아버지께 전달받은 부장님은 생각보다 제 얼굴이 보고 흠칫 놀라 셨습니다. 그리고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시더니 가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직 막내 영업사원이 라 매장에 오는 손님들에게 필요한 걸 여쭤보고 다른 손님들에게 연결시켜주는 정도와 문 앞에서 인사하는 정도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묘하게 손님들이 저를 피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장에 들어온 손님한테 제가 인사를 하면 눈치를 보며 고개만 끄덕이고 다른 곳으로 가거나 제품을 둘러보고 있는 어르신께 다가갔는데 어르신께서 인상을 쓰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날 오후 부장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저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제 흉터가 너무 싫어졌던 것 같습니다.
공장을 그만두고 집에 와서 한동안은 집에만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을
다니느라 만날 수도 없었고 만나자고 한들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밖에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흉터 때문에 선임들에게 불려 가거나 이유 없이 해코지를 당하는 일 없었고 군대에서도 그렇게 외롭게 지내다가 전역을 했습니다.
저는 하는 수없이 막노동이라 해야 하나 싶어 새벽에 일자리 센터에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운전을 배워서 택시 운전을 하는 게 어떻겠나고 하시길래 그동안 얼굴 때문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뒷말을 들으며 지내왔던 터라 앞만 보고 운전만 하면 되는 택시 일이 어쩌면 제게 딱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회사로 온 지 7년이 되어가는데 본사에서 사람들이 나온다고 했습니다.어쨌든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그날도 열심히 업무를 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과 양복 차림의 제 또래 남자 하나가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회장님 부장님 저희 직원입니다.”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아서 아마 처음 보셨을 거에요.
지점장님은 나를 회장님과 부장님에게 나를 소개했고 저는 어색하게 그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회사 운영에 대해 개선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회장님께서 제 얼굴을 가만히 바라 보시더니 제게 물으셨습니다.
내 이런 질문이 실례 인지를 알지만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그 얼굴에 상처에 왜 그렇게 된 건지 말해 줄 수 있나요?
그렇게 대놓고 물어본 사람은 처음이었고 그렇게 정중하게 물어본 사람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의 얼굴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회장님은 자신의 딸의 목숨을 구해준 청년이 바로 저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도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했다고 했습니다. 회장님은 일도 너무 바쁘고 자식 얼굴 한번 볼 시간도 부족해서 저에게 찾아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고 이후 회장님 딸은 다리 부상으로 더 이상 무용을 못 하게 되었고 결국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또한 운명이었는지 경영을 공부했던 딸이 회장님을 도와 택시 운수업에 발을 들여 지금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회장님은 다 자내 덕분이라고 또 한 번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회장님은 자꾸만 먹먹해지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제게 말씀하셨습니다.”정말 고맙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만나서 참 다행이야.”
“제가 그때도 사모님께 말씀드렸지만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회장님 따님도 많이 다치치 않았습니까.”
늦었지만 사례하고 싶다고 하셨고 우선 자식 때문에 평생을 택시 운전을 했으니 좀 더 좋은 근무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며 같이 4월에 서울로 갈 것을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모셔야 하는 어머니가 계셔서 안된다고 했고 회장님은 잠시 고민하셨습니다.
그러더니 내년에 정년인 지점장 님이 나가시면 그 자리를 대신해서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런 자리를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고 회장님은 이미 긍정의 대답을 들은 것처럼 기뻐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날은 너무 늦어 만남을 마무리 지었는데 다음날 회장님이 또 찾아오셨습니다. 서울로 돌아가시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저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셨습니다.
경상도에 있는 큰 대학병원에 가시더니 안에 있는 카페에서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을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의사는 회장님과 중학교 동창인데 회장님께서 사정 사정해서 외래 가 끝나고 잠깐 시간을 내서 왔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제 얼굴을 자세히 살폈고 꾸준히 치료하면 어느 정도 흉터를 가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런 희망적인 말을 들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 지점장으로 진급도 하였고 병원도 꾸준히 다니면서 얼굴의 흉터도 많이 상태가 호전되었습니다.
어머니는 20살 이후로 제게 웃는 건 처음 본다고 하십니다.
얼굴에 상처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결국은 어떤 방식이든 보상이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