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시어머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님 내일 생신이신데, 내일은 제가 시간이 안 될 거 같아서 주말에 찾아뵐게요 생신날 식사라도 같이 해야 하는데 정말 죄송해요.”
“아니다. 바쁜 거 뻔히 아는데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이렇게 전화해 준 것만으로도 그냥 고맙구나.”
“ 생신날 미역국이라도 꼭 끓여 드세요. 주말에는 하준이 하영이랑 같이 찾아 뵐게요.” 인사를 하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칫한 채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역시나 시어머님이 전화를 끊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님 전화 먼저 끊으라고 했잖아요.”
“ 알았어. 그럼 전화 끊으마.”라는 시어머님 말을 끝으로 전화가 종료가 되었습니다.
통화를 끝내고도 마음이 편치 않아 한동안 울적하기만 했어요. 그날따라 시어머님의 목소리가 더욱 처량하게만 느껴졌으니까요? 넋이 나간 채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던 제게 딸이 물었어요.
“또 왜 그러는데? 아니? 내일이 할머네 생신이잖아. 근데 혼자 쓸쓸히 계실까 봐 마음이 안 좋아서 그래.”
“큰엄마 큰아빠는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어떻게 한 번을 안 챙길 수가 있어?”
“ 그 사람들은 그냥 안 나타나 주는 게 도와주는 거니까 사람들 얘기는 꺼내지도 마!” 순간 제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런 제 얼굴을 살피던 딸이 짧은 한숨을 내쉰 뒤 또박또박 말했어요.
“내가 볼 땐 친가 가족들 얘기로 책을 써도 몇 권은 나올 거 같아~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만 드네 친가 가족들이 아니라 큰엄마 큰아빠로 정정을 해야겠구나! 근데 할머니랑 엄마 얘기로 책을 써도 역시나 여권은 나올 거야. 어쩜 가족들이 이렇게 극과 극일 수가 있을까?”

“주말에 할머니 만나면 두 사람 얘기는 절대 꺼내지도 마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 사드릴 참인데 할머니 맘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말이야.”
“그 정도는 나도 잘 알아 근데 두 사람은 할머니 생신을 전혀 모르고 있겠지 니 아빠 살아생전에도 한 번을 안 챙긴 거 보면 모르는 거겠지 암튼 할머니 앞에서 절대 얘기 꺼내지도 마 알았지!”
“알았어. 나도 정도는 안다니까.”
“할머니 생신 선물 뭘로 준비하지? 저번에 보니까, 할머니 신발이 많이 닳았던데 운동화 한 켤레 사드리던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자식 둘을 키우고 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시어머님의 배려 덕분이었어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영정사진 앞에서 통곡하다 실신하고 말았는데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시어머님은 이상하리만큼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정신줄을 놓고 있던 저와는 다르게 겉모습만 봐서는 담담해 보이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런 시어머님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한마디로 팔자가 아주 보통 드센 게 아닌 거지 근데 며느리 팔자도 참 박복하네 어쩜 시어머니 팔자를 닮을 게 뭐래~” 하지만 시어머님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던 절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결같은 모습으로 저를 챙기며 장례식장을 지켰으니까요? 물론 형님과 아주버님도 장례식장을 지키긴 했지만, 큰 위로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부의금 이야기를 꺼냈거든요.
“어머님 저희도 양심이라는 게 있으니까. 부의금 들어온 것 중에 우리 앞으로 들어온 것만 가져갈게요.”
“넌 지금 그게 니 동서 앞에서 할 말이라고 생각하니?”
“ 그러니까 우리한테 들어온 것만 가져간다고 정중히 말씀드렸잖아요.”
“ 옆집 개가 세상을 떠났어도 니들처럼 안 하겠다.”
“ 어머님이야말로 낱말할 처지가 아니잖아요.”
“뭐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며칠 밤을 지새웠던 시어머님의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는데요. 형님을 노려보던 시어머님이 다그쳤습니다.

“남말할 처지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
“어머님은 잘 못 들으셨나 본데 사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님 보고 친엄마가 많냐고 묻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저야 피 한 방울 안 섞였으니까. 그렇다 쳐도 어머님은 직접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어쩜 그렇게 담담할 수가 있는 거예요. 우리 그이가 세상을 떠나도 그럴 거란 생각을 하니까 저도 어머님이 무섭게만 보이더라고요.”
“그러는 너는 시동생이 세상을 떠났는데 부의금 타령이나 하고 앉았어.” 제가 시어머님 손을 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는데요. 시어머님이 형님에게 쏘아붙였습니다.
“니들한테 들어온 것만 정확하게 줄 테니까.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 그리고 앞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어머님 이제 아들 며느리라고는 우리밖에 없는데 그런 말 함부로 하시면 안 되죠.! ” 형님과 아주버님이 비아냥거리며 부의금을 챙겨서 돌아갔습니다. 그 뒤 우리는 서로 연을 끊고 살고 있었어요. 시어머님도 연락을 안 하고 지내는 것인지 두 사람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남편 사망 보험금이 나와서 시어머님을 찾아갔는데요. 문 밖에 차마 초인중을 누르지 못한 채 다시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을까요? 옆집 아주머니가 집에서 나오다가 제게 물었습니다.
“혹시 이 집에 온 거예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 사람 며칠째 저렇게 통곡을 하고 있어서 만나기 어려울거예요”
“그동안 오다가다 얼굴만 한두 번 봤던 사이에 이런 거 물어보기 좀 그렇지만 이 집 아들이 그렇게 됐다는 거 진짜예요? “
“아무리 들어도 울음소리가 너무 구슬퍼서 대충 짐작은 했는데 그게 맞는가 보네요?” 라고 말하던 옆집 아주머니 눈시울도 붉어져 있었어요. 옆집 아주머니 말처럼 시어머님의 울음소리는 사람의 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낯설게만 느껴지는 그런 소리였다고 해야 할까요?

아마도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꾹 참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요? 결국 초인종을 누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또다시 며칠이 지났고 시어머님을 찾아갔는데요. 이제 안정을 찾은 듯 시어머님이 버선발로 달려 나와 반겼습니다.
“여기까지 웬일이야?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 거지 하준이 하영이를 위해서라도 잘 먹어야 한다.”
“내가 마침 반찬을 좀 했는데 갈 때 가지고 가” 시어머님이 내내 제 손을 놓지 않은 채 다시 물었습니다.
“어디 아픈 곳은 없지? 진짜 괜찮은 거지? “
“저는 괜찮아요. 어머님은 괜찮으신 거예요? 살이 많이 빠지신 것 같은데요.? “
“난 아주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시어머님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요.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그런 시어머님에게 조심스레 보험금 이야기를 꺼냈어요.
“어머님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렇긴 한데 거의 보험금이 나왔어요. “
“그렇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많은 돈은 아니지만, 어머님께도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니 남편 보험금을 왜 나랑 나눠? “시어머님이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빤히 바라봤고 제가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입을 열었습니다.
“어머님께서 들어주신 보험이었잖아요. “
“그건 결혼 전에 그랬던 거고. 결혼하고 나서는 니들이 알아서 냈잖니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
“어머님께도 드려야 제 맘 편할 거 같아서요. “

“됐어 난 혼자 먹고살 만한데 넌 하준이 하영이도 키워야 하잖니~ 엄마가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쩌려고 그래 이제부터는 더 독하게 마음먹고 살아야 한다. “라고.시어머님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시어머님의 진심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는데요.
“힘들겠지만, 잘 견뎌내야 한다. 알겠니?“”순간 눈물이 딱 멈췄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친정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남동생이 하나 있긴 했지만, 먹고사는 게 힘들다 보니 그냥 안부 정도만 묻고 살았기에 그 뒤에도 저는 시어머님에게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은 형님이 찾아와서 경고 아닌 경고를 하기도 했어요.
“동서 혹시 어머님이랑 연락하고 사는 거야?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연락하고 살고 있죠.”
“서방님도 없는데 당연히는 무슨 당연히야 형님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이가 없더라도 하준이 하영이한테는 할머닌데 당연한 거 아닌가요 혹시나 동서가 어머님 재산 때문에 연락하고 지내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렇지? “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것 같은데,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연락하지 마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머님 재산에는 욕심도 내지 마! ” 형님이 다시 쏘아붙였습니다. 그 뒤 우리는 두 사람 전화번호를 차단한 채 몰래몰래 시어머님과만 연락하고 지냈습니다. 두 사람은 오로지 시어머님 재단에만 관심이 있었고, 시어머님 생신이 언제 이은 지조차도 모르고 있었어요. 남편 살아생전에도 시어머님 생신을 챙기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랬기에 생신날 홀로 계실 시어머님이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결국 잠깐 얼굴이라도 뵙고 올 생각에 시댁으로 향했어요. 깜짝 놀라게 해 드릴 생각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는데요. 마치 헛것이라도 본 것 마냥 시어머님이 놀라서 외쳤습니다.
“아니 네가 여긴 왜 왔어? “

“어머님 혼자 계실 거 생각하니까 마음이 영 안 좋아서 케이크 하나 사 왔어요. “
” 얘가 진짜 미쳤네? 연락을 하고 왔어야 할 거 아니야? “시어머님 얼굴이 창백해진 채 다시 외쳤습니다.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왜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
“지금 길게 말할 시간 없고 너 신발 비닐에 담아서 따라와라. “
“어머님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첫째네가 지금 아파트 주차장이라고 연락이 왔어 그니까 잠깐 동안만 숨어있어~”
“네 그냥 인사하면 되는 거지 숨다니요. 제가 왜 숨어요?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어머님 말을 듣고 있었는데요. 시어머님이 다시 다급한 목소리 소리로 말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인간들이 너한테 돈을 빼돌리니 뭐니 허구한 날 찾아와서 난리를 쳐대는데 네가 여기 있는 거 보면 더 난리를 쳐댈 거 아니야. 길게 말할 시간 없으니까. 작은 방 농장 안에 들어가서 조용히 숨어 있어. 그리고도 잘 들어 인간들이 뭔 짓을 하던지 넌 절대 나오면 안 된다. “
“잠깐 동안만 귀 막고 조용히 있어 약속할 수 있지? “시어머님이 어찌나 혼비백산에 있던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습니다. 결국 더 이상 생각할 여유도 없이 꼼짝없이 장롱 안으로 들어가서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요. 들어간 지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아주버님 부부가 들이닥쳤습니다.
“설마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찾아온 거냐? 올 거면 생일 케이크이라도 하나 사 오던지 하지 야박해도 너무 야박하는구나.”
“어머님 저희도 사 오려고 했는데, 마침 케이크가 다 팔렸다고 하더라고요.”
“어련하시겠습니까?” 시댁이 좁은 편이라 어렴풋이 대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는데요. 중간 형님의 목소리가 높아진 채 시어머님을 추궁했어요.
“어머님 저기 케어 이건 뭐예요? 뭐긴 뭐야? 오늘 내 생일이라고 했잖아.”
“그럼 어머님이 산 거라는 거예요. 왜 난 케이크 좀 사서 먹으면 안 되는 거냐 이놈의 팔자가 어찌나 박복한지 자식이 있어도 생일도 모르는데 혼자 케이크이라도 먹어야 할 거 아니야.”
“근데 내가 혼자 케이크를 사서 먹든 말든 니들이 뭔 상관이야?”
“아니 혹시나 동서가 사 온다 해서 그랬죠 그럼 그렇지 니들이 내 생일이라고 왔을 리가 없지 혹시나 둘째가 와서 내 돈이라도 뜯어갈까 싶어서 감시하러 온 거였구나.”
“어머님 감시라니요. 우리는 어머님이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내가 걱정이 되긴 무슨 걱정이 돼 서방님이 그렇게 된 건 참 마음 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동서한테 퍼주거나 그러시면 절대 안 돼요.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동서는 이제 남이나 마찬가지잖아요.” 형님이 남이라는 단어에 힘까지 준 채 큰소리로 외쳤는데요.

“나 혼자 생일 케이크이라도 먹어야 하니까 그만 가봐라.”
“엄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수씨한테 돈 주고 그러면 나 진짜 가만 안 있을 테니까. 그런 줄 알아 그랬다가는 이놈의 집구석을 싹 다 뒤집어엎어버릴 참이니까.”
“어떻게 보험금을 혼자 꿇고 갈 수가 있어? 무조건 달라고 했어야 할 거 아니야.” 순간 무엇인가가 나뒹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아무래도 아주버님이 뭔가를 내던진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한동안 두 사람이 바득바득 우기다가 돌아가는 듯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제야 제가 생각이 난 듯 시어머님이 달려와 사과했습니다.
“많이도 올랐지? 미안하다.”
“아니에요. 어머님은 괜찮으신 거예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 이골이 나서 괜찮아~”~”
“네 이골이 나다니요. 설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게 혹시나 너한테 재산이라도 나눠줄까 싶어서 인간들이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서 감시를 하지 뭐니~“
“그런 말씀을 왜 안 하신 거예요. 그래서 항상 밖에서 만나자고 했던 거예요? “
“혹시나 마주치면 너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싶어서 그랬어.” 시어머님이 지금까지 일을 털어놓았는데요. 들어보니 두 사람이 허구한 날 찾아와서 돈을 달라고 난리를 친 건 아무것도 아니었고 시어머님 명의로 된 아파트를 형님 명의로 바꿔달라는 말까지 했다네요.
“어머님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 집 명의를 제 이름으로 바꿔놓는 게 어떨까요? “
” 뭐 내 명의를 왜 이병의 로 바꿔? “
” 혹시나 어머님 마음 약해져서 동서한테 넘기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상관하지 마라 그리고 니 남편 이름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왜 니 명의로 해달라는 거니?”

“어머님도 아시다시피 이 사람은 주식이 나보다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잖아요.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제 명의로 하자는 것뿐이에요.. 그냥 쭉 사셔도 되니까. 명의만 제 명의로 바꾸자는 거예요. “
“동서가 작정하고 보험금도 싹 다 가져간 마당에 어머님까지 조정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돼서 그래요.” 라며 시어머님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네요.
그러던 어느 날은 퇴근하고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는데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뭔가를 사고 있었어요. 줄이 너무나 길게 늘어진 모습에 무슨 일인가 싶어 봤더니, 복권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었습니다. 순간 남편 생각이 나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는데요. 남편은 결혼 전부터 재미 삼아 매주 5000원씩 복권을 사곤 했어요. 처음에는 아까운 돈만 낭비하는 짓이라며 잔소리를 했지만, 남편이 웃으며 졸랐습니다.
그런 남편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저도 모르게 줄을 서서 복권을 구입했습니다. 남편. 말처럼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어요. 만약 일 등에 당첨되면 가장 먼저 뭘 하지 라는 상상으로 내내 행복했답니다. 하지만 매주 복권을 샀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한 며칠 행복한 상상을 하다가 깜빡 잊고 지냈는데요.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복권이 눈에 띄었고 재미 삼아 번호를 맞춰보다가 너무나 놀라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어요. 번호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 보다가 결국 딸을 불렀습니다.
“하영아 너 이리 좀 와 봐. “
“무슨 일 있는 거야?”
“빨리 좀 와봐~ 조용히 하고 이 번호 좀 맞춰봐~ 이게 좀 이상해? “
“엄마 로또 샀어? 근데 뭐가 이상해~?”
“아니 진짜 이상한 게 엄마가 몇 번이나 맞춰봤는데 1등이야. “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니? 엄마가 뭘 잘못 본 것 같으니까. 네가 다시 좀 봐봐~”
” 뭐 1등 ! ” 딸이 놀란 목소리로 휴대폰으로 뭔가를 확인하더니, 말했어요.
”엄마 요즘 이렇게 스캔하면 1등인지 아닌지 바로 알 수가 있어~“
“진짜~? 그럼 한번 해봐. ” 심장이 어찌나 두근거리던지 제가 눈까지 질끈 감고는 빌고 또 빌고 있었는데요.
“미쳤어 진짜 일 등이야. 엄마 진짜 일 등인데~” 딸이 놀란 목소리로 말을 했는데요.
“뭐 진짜 1등이란 말이야?. 내가 1 등이라고 ?우리한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 일등이야 일등~“
”하영아 너 잘 들어 어디 가서 우리 복권 당첨됐다는 소리 절대 하면 안 돼 알았지! “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거든. 근데 설마 이거 꿈 아닌 거지 ? 조금 있다가 깨어나는 거 아니야? 제발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제야 실감이 나는 것인지 딸이 볼을 잡아당기고 있었어요.
또한 너무나 놀란 나머지 한동안 넋을 놓고 있었고요. 그 뒤 우리는 당첨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무사히 당첨금 20억 원을 수령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엇을 할까 고민 고민하다가 큰 결정을 내렸는데요.
항상 전세로 전전하며 살았기에 우리 가족이 편히 머물 수 있는 집이 가장 절실했습니다. 그렇게 난생처음 상당히 큰 평수의 집을 샀고 리모델링까지 해서 집을 꾸몄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시어머님을 새로 산 집으로 모시고 와서 현관 밖에서 눈을 가리고 말을 꺼냈어요.

“어머님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이 준비돼 있거든요. 왜 눈을 가리고 난리야 깜짝 선물이라니 그리고 여기는 어딨 니? “
“준비되셨죠 제 손 잘 잡고 따라오셔야 해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요.
“여기가 앞으로 어머님이 지내실 방이에요. “라며 제가 손을 댔고 잘 꾸며진 방을 보며 시어머님이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게 뭐니 ? 이 집은 뭐야? “
“이 집 이제 우리 거예요. 제가 샀어요. 그리고. 이 방은 어머님이 지내실 방이에요. ”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제 말에 시어머님 또한 놀란 채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로또 일 등에 당첨됐다고 그게 참 말이야?”
“지금도 실감이 나진 않지만 여기가 꿈속이 아닌 게 확실한 것 같긴 해요. 근데 아주버님이랑 형님이 알면 골치 아플 것 같아서 절대 알리면 안 될 것 같아요. “
“그야 당연한 거지. 근데 내가 여기 들어와서 살아도 될는지 모르겠다. “
“그동안 집이 좁아서 따로 살았던 건데 이제는 합치는 거잖아요. 우리 앞으로 여행도 자주 다니고 행복하게 살아요. “
제 말에 시어머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는데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그 뒤 시어머님은 있던 집을 전세로 주고 소리소문도 없이 우리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바람에 아주버님 부부가 시어머님을 찾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전화번호까지 바꾼 채 완전히 연락을 끊었어요. 언젠가 우연히 소식을 듣긴 했는데 아주버님이 대출까지 받아서 주식을 하다가 어마어마한 금액을 날린 모양인지 두 사람이 이혼 소송을 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딩크족으로 산다며 자식도 낳지 않았었는데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답니다. 그 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알아볼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문득 며칠 전 시어머님을 모시고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작은 용종 몇 개를 떼긴 했지만,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답니다. 앞으로 시어머님이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