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파혼을 경험한 여성이에요. 여자에게 파혼은 그저 이별이 아닌 흠집으로 남는 것 같아요. 하자가 있어서 반품된 물건처럼요 하지만 이런 주위의 반응은 그나마 차마 넘길 수 있었어요.
특히 제 부모님이 상대방 부모에게 받았던 멸시와 인격적 폭력은 자식으로서 도저히 차마 넘길 수 없을 정도였죠. 저희 부모님은 학교 앞 떡볶이 장사를 시작으로 요식업에 종사하게 되셨어요.
원래 아빠는 태권도 사범이었는데. 사고로 다리를 다치시는 바람에 태권도 도장을 접어야만 했죠. 당장 생계가 걱정됐던 엄마는 적금을 깨서 돈으로 포장마차를 구입해 떡볶이 장사에 나섰죠 언젠가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하지만 평소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난 엄마였지만 초창기에는 파리만 날려야 했어요. 게다가 길거리 장사다 보니 단속반이 뜨면 장사를 접어야 했죠.
그 후 세 번의 수술 끝에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아빠까지 엄마를 도와 떡볶이 장사에 나서면서 수입은 조금씩 늘어갔고 3년 뒤쯤에는 근처에 조그마한 가게를 얻을 수 있었죠. 저희 부모님은 입버릇처럼 자신들은 성실한 것 외엔 재산이 없다시며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셨어요. 덕분에 그리 목이 좋은 가게가 아니었음에도 개업한 지 반년이 되기도 전에 입소문이 퍼져 손님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어요.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하잖아요. 부모가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준들 재산을 지킬 힘과 성실함이 없다면 제대로 지킬 수나 있겠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눈은 바로 자식의 눈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이런 걸 잘 아는 역시도 사람을 잘못 봐서 큰 고통을 받아야 했으니 헛똑똑이었죠.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바로 대기업에 취직을 하게 된 저는 사회 초년생이 다 그렇듯 하루빨리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어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던 그때 제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바로 예랑이었어요. 저보다 세 살 위인 예랑은 제 직속 선배였어요.
그런데 3개월쯤 지나 보니 노력과는 상관없는 이유로 능력이 평가되는 것 같더라고요. 부모의 재력이었죠. 대리 진급이 있던 기간이었는데. 제가 보기에 가장 일도 잘하고 성실했던 선배가 대리 진급에서 떨어진 거예요.
부서 내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선배였기에 당연히 대리 진급이 될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런데 예랑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선배가 떨어질 줄 알았다고요.

“입사 면접 볼 때 그랬다는 거야. 자긴 개천에서는 난 용이 되겠다고 쥐뿔도 없는 집에서 자기 하나 바라보고 온갖 허드레 일 다 하고 사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일하겠다고 말이지 근데 심사한 사람들이 나중에 뒤에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종신노비 하나 들어왔다고 했대~ 저런 애들은 승진에 누락돼도 지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믿고 더 열심히 노력할 놈들이라고 지 발로 회사를 나갈 일은 없으니 죽어라 부려먹으면 그만이다. 이거지 사회가 그래 더는 개천용 신화도 없지만, 개천 출신인 것조차도 감춰야 무시 안 당하고 살 수 있다고 그런 면에서 선배가 순진했던 거지!”
선배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마치 제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았거든요. 부모의 가난이 자식에게 족쇄가 된다니 너무 가혹하잖아요. 분하긴 했지만, 일 이후 회사에서 집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겁도 나 괜히 제 부모님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었거든요. 그래서 아무도 저희 집이 식당을 하는 걸 모르고 있었죠. 그런데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쉬는 날 부모님 가게에서 일을 도와드리는 걸 예랑한테 들킨 거예요.
점심 먹으러 밖에 나왔다가, 엄마랑 잠깐 통화를 했는데 그 대화를 예랑이 듣고 눈치를 잰 거였죠. 얼마 전 예랑한테 대리 승진에 누락된 선배의 길을 들었던 터라 내심 몸을 사리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근데 예랑이 의외의 말을 하지 뭐예요?
“난 집밥에 대한 추억이 없어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은 기억이 없거든. 늘 파출 아줌마가 해주는 밥이나 식당 밥을 먹고 자랐으니까.”

“서영 씨는 어때 어머님이 식당을 하실 정도면 음식 솜씨도 꽤 있으실 것 같은데, 뭘 제일 잘하셔?”
“잡채요 엄마 잡채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거든요. “그 말을 들은 예랑의 눈빛이 왠지 쓸쓸해 보였어요. 평소 누구보다 당당하던 남자가 보인 의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동정심이 일더군요. 제가 그럴 처지는 아닌데 말이죠.
얘랑은 저희 엄마가 만들어주신 잡채를 한번 먹어보고 싶다며 저를 졸라 저희 식당에 들렀어요. 엄마는 회사 선배라는 말의 메뉴에도 없는 잡채를 만들어 주셨죠. 그리고는 집밥처럼 항상 거하게 차려주셨어요. 그러자 얘랑은 밥을 두 그릇이나 먹어가며 엄마가 내주신 반찬을 싹 먹어치웠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이 남자가 툭하면 저희 가게에 가서 엄마한테 반찬을 받아가지 않겠어요. 저희 부모님께 용돈도 찔러드리면서요. 얘랑이 어찌나 넉살이 좋은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꼭 우리 부모님 자식인 줄 착각하겠더라니까요?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구렁이 담 넘듯 저희 부모님과 친분을 쌓은 예랑과 저는 얼마 뒤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좀 이른 감이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 어차피 할 결혼이라면 일찍 해서 빨리 생활을 안정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혼자 버는 것보다는 둘이 버는 게 내 집 장만도 빠를 것 같았고요. 그런데 얘랑이 그러는 거예요.
“집을 전세로 구할까 했는데 엄마가 그냥 아파트를 사주시겠대~ 어차피 나중에 유산으로 줄 거 미리 떼어준다고 생각하시겠다나? 30 평대를 생각하시던데 어때?”
“뭐어? 30 평대 아파트??” 순간 제 귀를 의심했어요.
저희 집과는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니까요? 저희는 아직도 전세를 못 면한 처지였거든요. 부모님께서 조그마한 식당 하나 운영하시며 살아가는 처지인데 자식 신혼집으로 30 평대 아파트를 해주는 집하고 상대가 되나요? 그래서 괜히 마음이 불안하더라고요. 그런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어요. 예랑과 함께 예비 시댁을 찾았던 날이었죠.
나름 처음 뵙는 어머니께 책 잡히지 않으려고 신경 쓰고 갔는데 글쎄 집에 안 계시더라고요. 분명 며칠 전부터 약속됐던 자리인데 말이죠. 예랑은 난감한 표정으로 제 눈치를 보기에 바빴어요. 그래서 마음을 풀어줄 겸 혹시 어머님이 날짜를 착각하신 걸지도 모르니 전화부터 해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약속시간을 몇 시간이나 넘기고 집에 오신 어머님이 어디 갔다 오셨냐는 얘랑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셨거든요.
“뭐 ~대단한 사람이 온다고 내가 집에서 꽃받침 하고 기다려야 돼? 됐다.. 이제와 내가 싫다고 하면, 이 결혼 안 할 거니 아니잖아.?”

“니 멋대로 고른 상대니까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니들 맘대로 해 대신 이거 하나만 명심해라. 네가 내 아들 동거인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널 며느리로 받아 들일은 없을 거니까 말이야. 난 그럴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지 어디 언감생심 내 아들을 노려?? 하여간 없는 집구석 애들이 더 영악하다니까.”
그 말에 예랑은 발끈했어요.
“어머니 정말 왜 이러세요.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죠 어머니께서 계속 이러시면 평생 연락 끊고 살 거라고요. 그만큼 가지셨으면 됐잖아요. 제발 욕심 좀 버리시라고요. 전 어머니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불 꺼진 집에서 돈 쌓아놓고 혼자 외롭게 살기보단 좁은 집에서 복닥거리고 살더라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 숟가락 부대끼며 사는 삶을 살 거라고요.”
“그러니까 제 결혼 반대하실 거면 어머님 마음대로 하세요. 제 마음 변할 일은 없으니까요?” 남자친구는 제 손을 잡고 집을 나섰어요. 그리곤 어머님을 대신해 사과했어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첫 만남부터 이런 수모를 당하고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더군요.
내 기분 나쁜 건 둘째, 치고 설마 내 부모님한테도 이런 식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어요.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을 건드리는 건 참을 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죠. 그런데 제가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만 거예요. 점심시간이라 예랑과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더라고요. 점심 장사로 한창 바쁠 시간인데 말이죠.
그래서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받았더니..
“여기 내 시어머니 되실 분이 와 계셔..” 그때였죠 수화기 너머로 어머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어머 이 여자가 미쳤나 누가 시어머니야? 내가 왜 이런 그지 같은 집구석에서 자란 애랑 고부지간이 돼야 해~ 아우 치 떨리기 싫어.” 안 봐도 지금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예랑과 함께 부모님 가게로 달려갔어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한창 분배할 홀 안에 어머님 혼자 앉아 있더라고요. 그리고 앞에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저희 부모님이 계셨어요. 그때 마침 손님이 들어오자 어머님이 버럭 소리 질렀어요.
“장사 안 해요.” 어안이 벙벙해진 손님은 뒷걸음질 치며 가버렸어요.
순간 열이 확 오르더군요. 그래서 두 주먹 꽉 쥐고 소리쳤죠.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왜 남의 영업장에 와서 행패를 부리냐고요. 하실 말씀이 있으면 미리 연락이라도 하실 일이지 왜 남의 집 점심 장사까지 망쳐가며 이러냐고요. 일어나세요. 당장 가시라고요.”
“이게 어디서 돼먹지 않게 큰소리야. 왜? 내 아들이 네 편 들어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니 내가 호구로 보여 ~하이고 가게라 우는 코딱지만 한 거 하나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주제에 언감생심 누굴 너무 봐~ 더 길게 말할 거 없고 당장 헤어져! 이놈 자식 너 이 계집애랑 끝까지 갖겠다고 고집부리면 나 너한테 유산 한 푼도 안 줄 거야.”
“야~ 너 내 성격 알지 안 한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해 그러니 네가 포기해!”
“엄마 정말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나오셔야겠어요. 제발 고집 그만 부리세요. 엄마가 이 사람한테 상처 입히면 입힐수록 결국 상처 엄마한테 돌아오게 돼 있다고요. 저 엄마 재산에 욕심 없어요. 내가 버는 돈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만하세요. “
유산으로 아들을 꿰려 했던 시도가 실패하자 어머님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람처럼 씩씩거렸어요.
“너 솔직히 말해 너 80억짜리 내 빌딩 탐나서 내 아들 꼬신 거지? 그런 거지? 말해 어서 이런 그지 같은 집구석에서 살다 간 평생 팔자 못 고칠 것 같으니까. 돈 노리고 우리 집에 들어오겠다. 작정한 거 아니냐고 하필이면 들러붙어도 이런 구질구질한 집구석 인간들이 들러붙어선 사람을 혈압 오르게 하고 있어.”
“평생 이 엄마밖에 모르던 내 아들까지 세뇌시켜선 모자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들어? 이 쓰레기만도 못한 년이 죽어라 이년아 차라리 죽으라고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이야!” 어머님은 미친 사람처럼 광분하며 들고 있던 핸드백으로 저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예랑이 아무리 뜯어말려도 소용이 없었어요. 결국 참다못한 제가 어머님을 힘껏 떠밀었죠.
“그만하세요. 경찰 부르기 전에 당신이 뭔데 날 때리는 겁니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냐고요? 당신이 80억짜리 빌딩 가진 사람이면 아무나 함부로 욕하고 때려도 되는 겁니까? 무슨 권리로요. 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따지고 보면 하든 그럴 권리도 없는데 ~”
“저요 당신한테 맞을 이유 없어요. 난 당신 아들 돈 때문에 꼬신 것도 아니고 잘난 당신 돈으로 편하게 먹고 살 생각도 없어요. 난 충분히 능력이 되는 사람이니까요? 그쪽은 잘난 게 없어서 돈 가진 유세라도 떨고 싶은 모양인데 그럴 거면 드라마에서처럼 돈다발이라도 던져주고 때리든가~ 그럴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어디서 감히 나한테 손찌검이에요. “
“뭐? 이년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떠드는 것 좀 봐? 너 미쳤어? “
“아뇨 아주 정신 멀쩡해요. 왜 딸 같은 애한테 이런 소리를 들으니까. 자존심 상해요? 화나요? 그러게 인간 대접해 줄 때 인간답게 굴었어야지 왜 더러운 성짓머리를 엄한 사람한테는 풀고 지랄이냐고요. 나요? 이 결혼 내가 안 해요. 왠지 알아요.”
“당신이 너무 천박해서 같이 있다간 나까지 동급으로 취급될까 봐 너무 자존심 상하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 이러지 말고 잘난 80억짜리 건물에 가서 벽 보고 지랄을 하든 똥을 싸든 마음대로 하세요. 우리 가게에 밥 먹으러 온 거 아니면 당장 가게에서 나가주세요! 당장! “
저는 어머님과 예랑은 가게에서 쫓아내고 문을 걸어버렸어요. 그러자 어머님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면서 우리 가게 문을 부술 듯이 흔들어댔고 그런 엄마의 모습이 창피했던 예랑은 힘으로 엄마를 끌고 차에 올랐어요.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가게 안에는 저와 부모님만 남았어요. 저희 부모님은 아무 말 없이 황망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시더군요. 그 모습에 괜히 화가 났어요.
그리고는 예랑한테 방식으로 파혼 선언을 했죠.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황이라 예랑도 더는 말없이 순순히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몇 달 뒤 얘랑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고 후로는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었죠.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러 저는 대리로 승진을 했어요. 여전히 라인은 타지 못했지만, 대신 제가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로 했어요.

그러다 보면 제 진가를 알아줄 사람이 나타날 거라 믿거든요. 일적으로도 남녀 관계 쪽으로도 요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목 좋은 곳으로 가게를 넓혀가셨어요. 가게가 넓다 보니 박리담의 전략이 탄력을 받아서 매출도 많이 올랐고 덕분에 직원도 여러 명 두게 되었죠.
그런데도 부모님은 초심을 잃지 않으시려고 가격도 안 올리시고 하루도 가게를 비우는 날 없이 열심히 자리를 지키고 계시죠. 그렇게 평소와 갔던 어느 날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거예요. 그날은 오래간만에 부모님 가게로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간 날이었어요. 저는 부모님과 상의할 일이 있어서 직원들만 먼저 보내고 남아서 가계 정리를 돕고 있었죠. 점심 장사를 하고 난 후라 설거짓 거리랑 잔반이 많이 나왔더라고요.
그때였죠 잔반을 버리려고 뒷마당으로 나간 직원이 비명을 지르는 거예요. 그 소리에 저와 부모님은 뒷마당으로 달려 나갔어요. 그런데 거기에 떼국물이 줄줄 흐르는 노숙인 아주머니가 잔반이 가득 담긴 비닐을 손에 쥐곤 직원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지 뭐예요?
“내가 누군 줄 알아? 이래 봬도 강남에 80억짜리 건물을 가진 사람이야. 감히 어디서 내 앞길을 막아.. 당장 꺼주지 못해.”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저와 부모님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온몸의 명품을 휘두르고 지내던 전 예랑의 엄마가 거지꼴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저희 엄마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며 예랑이 엄마를 달래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어요.

그리곤 직접 음식을 만들어 점심상을 차려주었죠. 그러자 예랑 엄마는 눈치를 살피며 게걸스럽게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사흘을 굶었더니, 눈에 뵈는 게 없어서 잔반통을 뒤졌다더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빌딩에 공실이 많이 나서 이자와 세금 낼 돈도 안 나오자 건물을 팔아 한창 유행하던 코인을 샀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하필 코인이 폭락하는 바람에 전 재산도 난리고 아들과도 절연해 혼자 떠돌며 살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외계인이 자기 아들을 유괴해 간 게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자기 80억 건물을 뺏으려는 계략인 것 같다는 둥 횡설수설을 하는 거예요.
아마도 오랜 시간 길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싶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안쓰럽더라고요. 한때는 너무 미워서 뒤통수라도 한 대 갈겨주고 싶었던 사람인데 이렇게 망가져선 자식도 없이 길바닥을 헤매고 있으니 말이에요. 보다 못한 아빠는 시설에 전화를 걸어 얘랑 엄마의 사정을 말했어요. 그리고 한 시간쯤 뒤 시설 사람들이 와서 예랑 엄마를 모시고 갔어요. 얘랑 엄마는 저희 부모님을 향해 넓죽 인사를 하더군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때는 돈 좀 있다고 자기 위에 사람 없는 것처럼 굴더니, 이제는 줄인 배를 채울 걸 찾아 남이 먹던 잔반까지 훔쳐야 하는 신세가 되다니 인생 참 묘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돈 좀 있다고 자신을 무시하던 여자한테 따뜻한 밥상을 차려준 엄마야말로 우아하게 복수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돈보다 더 값비싼 건 바로 사람의 마음일 테니까요? 지금까지 제 사연을 들어주셔서 감사드려요 들어주신 모든 분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연들과 따뜻한 삶이 이어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