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하나 봤더니…충격” IQ 210 수치로 5살에 대학 입학, 11살에 NASA연구원 이였던 천재소년의 현재 근황

우리나라 곳곳에는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는 다양한 영재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이러한 영재를 찾는 TV 프로그램이도 있었을 만큼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웠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학습 수준이 남달라 눈에 띄는 일명 ‘신동’이라고 불려왔는데요. 한때 천재라고 불리며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던 원조 신동은 현재 성인이 되어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한데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60년대 아인슈타인(IQ 180)보다 지능지수(IQ)가 높다는 영재였던 김웅용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떠들썩 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던 그는 IQ가 무려 210이라는 수치가 나오면서 당시 천재 소년이라고 불리었습니다. 높은 IQ로 세계 기네스북에 10년간 1위로 등재되었습니다. 

그는 생후 6개월 때 간단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었고 11개월이 되자 한글뿐만 아니라 천자문까지 뗐다고 합니다. 2살에는 일기를 썼고 3살에 영어, 독일어, 일본어를 익혔으며 4살에는 미적분을 풀었다고 합니다. 

5살 때는 한양대 과학교육과에 입학했고 8살 때는 건국대 물리학을 수료했으며  11살에는 NASA(미국항공우주국 나사)로 스카우트가 되면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그는 4살 때 직접 책을 출간했었다고 하는데요.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고 해외 번역판이 나올 만큼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자필로 작성한 책이었는데 3살짜리 아이의 필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깔끔한 글씨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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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78년  그가 15살이 되었을 때 주변의 비인간적인 시선과 반복적인 계산 노동에 어려움이 있었고 또래 친구들과 평범한 사교활동을 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하지만 김웅용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연구소 취직을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언론은 그에게 ‘실패한 천재’라는 꼬리표를 달아주면서 김웅용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게 되었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이상의 재학증명서가 없기 때문에 검정고시를 통해 졸업하고 충북대에 토목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해야 했는데요.


졸업 후 모교의 시간강사를 거쳐 카이스트 대우교수, 국토 환경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취임했고 2006년  충북개발공사에 입사하면서 기획홍보부 부장, 사업처 처장 등을 역임했으며 2014년에는 신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근무 중에 있다고 전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갑작스럽게 김웅용이 화제가 되기 시작하는데요. 루마니아의 언론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에 3위로 김웅용을 소개했고 그는 다시 세상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됩니다. 

김웅용은 현재  인터뷰를 통해 “과거에 천재라고 불렸다고 해서 지금 내가 반드시 하버드나 예일대에서 교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천재라는 말을 잊은 지 오래이며 잊어주길 바란다”라고 전했습니다.

원조 영재였던 김웅용과 비슷한 길을 걸었던 영재가 있습니다. 천재소년 1997년생 송유근은  과거에 엄청난 학습능력과 아이큐로 전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의 IQ는 187로 상당히 높았었는데요.  6살에 미적분을 풀고 정보처리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뿐만 아니라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6개월 만에 거쳐 중·고교 졸업 검정고시를 1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7살에는 양자역학을 이해했고 8살에 인하대학교 2학기 수시 특이 경력 분야로 자연과학대학 자연계열에 지원해 입학했습니다.

그는 초끈이론이나 빅뱅이론 같은 것을 연구하고 싶었는데 학부에서는 할 수가 없어서 인하대를 자퇴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원하던 학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대학을 중퇴했고 독학사로 전자 계산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12살에 UST 천문우주과학 전공 석박사 통합과정을 진학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게 되는데요. 그는 영국의 천체물리학 저널에 발표한 블랙홀 관련 논문이 표절 의혹에 휘말렸고 2016년에 논문이 공식적으로 철회되었는데요. 2018년에 박사학위 논문 심사에 탈락합니다. 

송유근은 국내  최연소 박사가 될 희망으로 국민적인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엔 SCI 급 저널 APJ에 게재했던 논문이 표절로 판명되면서 등재가 취소되고 송유근은 2주간 근신과 반성문 제출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지도 교수였던 박석재 교수가 해임되면서 교체가 되었습니다. 

그는 재학 연한인 8년 안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결국 제적되었다고 하는데요.

UST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선 재학 기간 중 박사학위 청구 논문 심사를 받아야 하고 관련 논문 1편을 과학기술 논문 인용색인급 저널에 발표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미 연구주제와 내용이 상당 부분 정해진 상황이기 때문에 새 논문의 지도 교수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결국 UST는 지난해 9월,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제적 처리를 하게 됩니다.

송유근은 “지도교수 해임으로 UST에서 실제로 교육받은 기간은 7년에 불과하다”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대전지법 행정 2부는 논문 표절 논란의 책임은 송유근에게 있다며 피고인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재학 연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라며 기각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도 “원심은 정당하고 원고 주장에 이유가 없다”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송유근은 결국 12살에 독학사로 취득한 전자 계산학 학사 학위만 취득하고  그 해  12월 24일 군대에 입대를 선택하고 현재 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린 시절에 성인들의 삶을 감당해야 했던 영재 소년들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지 조그나마 짐작이 가는 것 같은데요. 

아이들은 아이다운 삶을 살아야 하고 어른들은 어른다운 삶을 살아야 하지만 두 영재들은 ‘스타 신동’이라는 수식어에 감당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삶이 그들에겐 가장 멋진 삶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