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한 남성은 각설이 행색을 하고 인천 월미도 공연장에서 신나는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품바공연으로 먹고 살아던 남성은 엿과 테이프를 팔아서 생활을 하는 청량리 털보 각설이라 불리었습니다.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오늘도 먹고살기 위해 동료 품바들과 징을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한바탕 신명나는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품바들에 손에는 가요 메들리 테이프가 들려있었고 한쪽에서는 맛있는 엿을 팔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각설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왔고 100명 남짓한 관객들이 모여서 이들의 공연을 구경하고 있었죠.
신나게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저 건너편에서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고 , 개구리 소년 부모들이 아이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나주봉 씨는 부모들에게 전단지 500장을 건네받아 함께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주봉 씨는 이들에게 전단지 500장을 받아 돌리게 되면서 자신의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당시 전 재산이었던 7천만 원을 털어 전국을 돌며 실종된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종됐던 아이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나 씨는 그 뒤로도 실종 아동을 찾는 일을 그만 들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개구리 소년을 찾고 다닐 때 전국에서 수백명의 부모들이 아이가 실종되었다고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실종 아동 찾기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나주봉 씨는 하루하루 각설이 공연을 해서 먹고살아야 했지만 생계가 어려워 보험설계사, 1,5톤 트럭을 운전을 병행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실종 아이들을 찾는 일을 했습니다.

나 씨는 최선을 다해서 실종 아이들 사건 장소를 찾아다녔고 이러한 노력으로 실종된 아이들 중 750명 이상을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물건을 파는 일보다 아이를 찾는 일이 더 중요했다고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찾지 못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실종 아이들 중 유괴되는 사건이 많았고 이들 중에서는 숨진 채 발견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4년 동안 3천 600여 만 원을 들여 테이프 6만 개를 만들었고, 범인을 잡기 위해 직접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에 그를 사람들은 각설이 탐정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실종 아이들을 끝내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나주봉 씨는 ‘전국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을 만들었고 이 단체의 회장을 맡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2001년 서울시민대상 상금 300만 원으로 꾸린 컨테이너 사무실은 실종 아동들의 전단지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나 씨는 실종 아동을 찾는 일에 하루 수입을 모두 써버리기도 하고 그나마 끌고 다니던 1.5톤짜리 트럭을 팔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매 순간 오늘 돈이 한 푼도 없어도 또 다음날 열정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건 그가 어렸을 적 어머니를 잃고 외롭게 자란 경험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전국 고아원과 기도원 등을 뒤져 찾아낸 실종 아이들이 750명에 이른다고 설명했습니다.
18세 미만 아동을 기준으로 매년 실종자로 신고되는 이들은 2만 명이 넘고 경찰에 따르면 실종아동 신고 건수는 2018년 2만 1980건에서 2020년 1만 9146건으로 줄었다가 2021년 2만 1379건으로 다시 늘었다고 전합니다.

실종 아동 중에는 1년 이상 찾지 못해 장기 실종 상태로 남아있는 사례도 작년 기준 871건에 달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들 중 95%는 10년 이상 실종된 상태로 남아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