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령 현역 의사로 평생 환자를 돌보았던 한원주(의학46) 교우가 향년 94세 나이로 작고하였습니다. 그녀는 40년간 의료봉사를 하며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았는데요.
한 박사는 일제 감정기에 태어나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부친 한규상의 항일 투쟁을 지원하던 모친 박덕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모님 영향을 받아 고려대 의대에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49년 졸업하였습니다.
이후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미국 의사 자격을 취득하고 전문의로 일하다가 10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개인병원을 운영했습니다.
한 박사는 한국으로 돌와와서 병원을 개원해 돈도 벌 만큼 벌었습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남편이 죽은 후, 돈도 명예도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잘 나가던 병원을 접고 개인 재산을 들여가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료 진료소를 차렸습니다.
이후 그녀는 노숙자,영세민을 위한 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생전 아버지의 봉사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한원주 박사는 그 뜻을 이어 40년간 소외계층을 위한 의료 봉사와 무료 진료를 하며 베풀고 나누는 의료인의 삶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한지상 지사 역시, 그녀가 6살이 될 무렵 의사로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센병 환자와 형무 소 수감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봉사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은 것이 그녀가 평생 의료봉사를 하게 된 큰 계기로 작용되었다고 합니다.
봉사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가진 그녀는 나눔을 통해 기쁨이 넘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몸의 치료에서 더 나아가 마음을 치료하는 ‘전인 치우’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전인 치유란 질병뿐 아니라 환자의 개인적인 문제 등 의사가 관심 있게 돌보아야 할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치료하는 것을 뜻합니다.
한 박사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소외계층 환자들에게 욱신의 건강뿐 아니라 영혼의 건강까지 돌봐주고 싶다고 전했는데요.
이러한 전인 치료는 많은 소외 계층 환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진료소에서 교통비 외에 무급으로 환자들을 진료했습니다. 또한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는 의료봉사를 자처해 소외계층 환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 박사는 본인이 받은 월급의 대부분을 사화 단체에 기부하는가 하면 수여받은 상금마저 기꺼이 기부하는 그녀만의 신념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그는 “남은 생도 노인환자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현역 의사로 그들 곁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녀의 말은 그녀가 걸어온 길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원주 박사는 죽음을 앞둔 직전까지도 남양주의 매그너스 요양병원에서 내과 과장으로 근무하며 환자를 돌봤습니다. 끝까지 직접 환자를 진료하던 그는 노환이 악화되어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다가 말년을 지낸 매그너스 요양병원으로 돌아와 마지막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공로를 기리며 대한 적십자사는 창립 115주년 기념식에서 그녀에게 박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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